일본의 여름 더위는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그나마 버티는 건 냉방장치 덕분이다. 대중 시설은 물론 웬만한 가정엔 에어컨이 상비품이다.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에어컨 풀가동은 그림의 떡이다. 전력 부족 때문이다.

절전 붐은 광범위하다. 대부분의 관청은 에어컨을 켜지 않고 전등도 가급적 끄는 추세다. 일부 지자체는 오후 1~3시의 ‘시에스타(스페인의 낮잠 제도)’까지 결정했다. 압권은 정부 주도의 ‘쿨 비즈(Cool Biz)’다. 여름철 간소 복장으로 일하도록 복무 규정까지 바꿨다. 원래였다면 6~9월에 한정된 쿨 비즈가 올해는 5~10월까지 연장됐다. ‘슈퍼 쿨 비즈’다. 일본 정부는 6월부터 대대적인 캠페인에 나섰다. 정부가 적극적이니 민간 기업의 도입 속도도 탄력을 받는 중이다.

◆ 청바지에 샌들까지 허용하는 곳 많아

핵심은 시원한 옷차림으로 에어컨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슈퍼 쿨 비즈’는 다양하다. 최소 분모는 실내 온도가 섭씨 영상 28도로 맞춰진 업무 공간에서 시원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가벼운 복장 규정이다. 겉옷을 입지 않고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게 기본이다. 추가적인 간편 복장도 권장된다. 비치·폴로셔츠 허용이 그렇다. 이는 작년엔 허용되지 않았다.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청바지에 샌들까지 허용하는 곳이 많다. 소니 등은 신입 사원 면접 때조차 쿨 비즈를 선택했다. 주요 언론은 실례하지 않는 쿨 비즈 착용 사례를 상세히 다룬다. 한편 근무 복장을 제외한 ‘슈퍼 쿨 비즈’의 추가 옵션은 근무시간 조정, 창가의 방열장치 설치 등이 있다.

‘슈퍼 쿨 비즈’는 일본처럼 형식·보수적인 곳에서 드문 캠페인이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높다는 방증이다. 실제 반발도 적지 않다. 관리직·경영진의 이해와 실천이 필요한 이유다. 대표적인 걸림돌은 “상대방에게 실례일 수 있다”는 염려다. 다만 현재로선 대의명분보다 실리 추구의 판정승이다. 실례·무례의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절전을 둘러싼 사회적 공감대가 일반적이다. 일부는 메일 하단에 ‘올여름에는 슈퍼 쿨 비즈를 도입 중’이라는 안내문을 넣어 양해를 구한다. 회사 입구에 관련 문구를 붙여둔 곳도 있다. 심지어 품격을 중시하는 백화점 업계조차 넥타이 없이 접객하는 곳이 생겨났다. 캠페인은 확산 중이다. 주저하던 대기업·금융회사·관공서까지 폭넓게 합류했다. 파나소닉은 근로자 10만 명을 대상으로 쿨 비즈를 실시한다. 기대감은 높다. 단순 절전에서 시작했지만 근무 복장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파격 실험이 성공하면 전통적인 근무 환경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무 복장에서 시작되는 업무 혁신 기대감이다.

관련 업계로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의류 업체의 매출 증가 기대감이 대표적이다. 유니클로는 ‘절전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쾌적하면서도 접객 상대에게 실례하지 않는 코디네이터 8개 종류를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회사는 소비자 1명당 쿨 비즈 의류에 1만7000엔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백화점·양판점 등엔 쿨 비즈 대응 상품을 진열한 특설 코너가 이미 설치됐다. 남성 셔츠와 여성 팬츠 등이 주력인 가운데 구두·혁대 등 관련 아이템이 대거 선보였다. 아이템은 예년의 2~3배 규모다. 기능면에선 냄새를 없애거나 땀을 말리기 쉬운 ‘항균 방취’를 강화한 게 많다. ‘이온’은 올여름 의류 제품 판매 목표를 전년 대비 60% 늘어난 1000만 장을 기대했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목표량을 최근 상향 조정했다.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라쿠텐’에 ‘쿨 비즈’를 입력하면 판매 상품만 2만4000건이 넘게 뜬다(6월 말).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14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