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1월17일 국내 한 신문이 김일성 사망 소식을 호외로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도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따라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오보로 판명됐다. 그 와중에 제목을 '사망'이 아니라 '사망설'로 붙인 편집자는 신중하게 대응했다는 이유로 언론단체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김일성은 그로부터 8년 가까이 더 살았다.

북한 특유의 폐쇄성에 정보기관들이 극도로 조심스럽게 대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김정일 유고설도 가끔 터져나온다. 2008년 5월과 10월에 이어 2009년 12월에도 김정일 사망설이 퍼져 확인 소동이 벌어지면서 증권시장이 출렁였다. 인터넷을 통해 미확인 소식통이 전하는 추측이 여과없이 유포된 탓이다. 진위 확인을 위해 당국에 연락하면 "그 양반 해마다 한번씩 사망하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농담까지 생겼을 정도다.

'여러 차례 사망'하기로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뒤지지 않는다. 툭하면 유고설이 돌았으나 그 때마다 TV에 모습을 드러내 건재를 과시했다. 미군이 이라크군을 동요시키고 후세인 소재 파악을 위한 심리전으로 사망설을 의도적으로 흘린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2006년엔 빈 라덴이 장티푸스로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CNN은 '빈 라덴이 죽었다는 정보는 없지만 수인성 질병을 앓고 있어 심각한 상태'라고 전했다. 빈 라덴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2007년 9 · 11테러 6주년을 앞두고 '진정한 종교는 이슬람교뿐이다. 빨리 개종하라'는 육성 비디오를 공개했다.

중국의 장쩌민 전 국가주석 사망설이 퍼져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놨다. 85세로 고령인데다 와병설이 나왔던 터라 그럴 듯하게 들렸다. 일부 언론은 시신이 안치됐다는 병원이름까지 언급했다. 신화통신이 공식 부인했는데도 소문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97년 덩샤오핑 사망 사실은 5시간30분 만에 공개됐다. 이번에도 사실을 감출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많지만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부인한 것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15년 동안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며 '상하이방'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장쩌민의 유고가 권력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죽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의 문제'라고 했다. 소문의 진위야 어떻든 중국 발전의 중심에 섰던 한 세대가 또 저물고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