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 "돈 생각하면 괴로워져…일에 빠질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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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스타 CEO '숨은 1인치'
지난해 8월 한경비즈니스가 서울 청담동의 티켓몬스터를 찾았을 때 이 회사는 시작한 지 갓 3개월이 되던 때였다. 당시 공동 창업자 5인은 풋풋한 대학생 같았고 마분지에 매출 그래프를 그려 놓은 것이나 되는 대로 쌓여 있는 자료와 정해진 자리 없이 노트북 PC를 들고 오가며 일하는 사무실은 동아리방 같은 분위기였다.
8개월 만에 찾은 티켓몬스터는 이제 어엿한 중견기업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월매출은 10억 원에서 220억 원으로 20배가량 성장했다. 직원은 5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고, 그에 맞은 사무실을 찾다 보니 역삼·잠실로 두 번 이사해야 했다.
외모상으로 신현성 대표는 변한 것이 없었다. 느리면서도 조용한 말투, 해맑은 표정은 여전했다. 심지어 지난해 인터뷰 때 입었던 티셔츠와 똑같은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신 대표의 창업 동기는 단순하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와튼스쿨 출신인 그는 미국의 유명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2년 일한 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무작정 귀국했다. 이때가 티켓몬스터 시작 5개월 전. 처음 20여 개의 아이템을 놓고 고민했다. 멕시칸 스타일 음식점에서부터 인터넷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큰 시장에 진입하려면 큰 자본이 필요했고 작은 자본으로는 작은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데, 작은 자본으로 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중소기업을 위한 마케팅 서비스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티켓몬스터다.
월매출 220억 원…직원 600명
컨설팅 회사를 다녔으니 ‘모은 돈이 좀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업 자금은 창업 멤버 5명이 각자 100만 원씩 모은 500만 원이었다. 사무실 대신 2년 전 작고한 할머니의 집에 모여 5명이 숙식을 직접 해결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당시 1~2년 차라 연봉이 높지 않았고 뉴욕이라 집세로 월 200만 원을 낸 데다 그땐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던 때라 모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의 사례는 창업에 큰돈이 필수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티켓몬스터의 성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매출과 순이익이 늘었지만, 이를 다시 재투자하는 과정이다. 요즘에도 월 60~70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순이익은 인건비와 사무실 비용으로 다시 투자되는 것이다. 월 150만 원을 용돈으로 쓰고 있다는 신 대표는 “비교적 만족할 만한 생활수준”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돈이나 명예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자기 몰입형이다. “돈이나 단기간 성과에 초점을 두면 창업은 어떤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괴롭습니다. 멋진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즐겁습니다.”
티켓몬스터는 일반적인 회사라면 몇 년이 걸릴 성장을 1년 남짓한 시간에 경험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만, 시행착오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소셜 커머스가 급성장하면서 인프라 구축이 안 돼 고객 관리에 문제가 있었으나 빠르게 대응해 시스템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때 대응하지 않았다면 성장이 급격히 꺾였을 겁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는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 파고들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
1985년생.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졸업(비즈니스 전공). 2007년 인바이트 미디어 창업. 2008년 맥킨지컨설팅 입사. 2010년 티켓몬스터 창업(현 대표이사).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14호 제공 기사입니다>
지난해 8월 한경비즈니스가 서울 청담동의 티켓몬스터를 찾았을 때 이 회사는 시작한 지 갓 3개월이 되던 때였다. 당시 공동 창업자 5인은 풋풋한 대학생 같았고 마분지에 매출 그래프를 그려 놓은 것이나 되는 대로 쌓여 있는 자료와 정해진 자리 없이 노트북 PC를 들고 오가며 일하는 사무실은 동아리방 같은 분위기였다.
8개월 만에 찾은 티켓몬스터는 이제 어엿한 중견기업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월매출은 10억 원에서 220억 원으로 20배가량 성장했다. 직원은 5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고, 그에 맞은 사무실을 찾다 보니 역삼·잠실로 두 번 이사해야 했다.
외모상으로 신현성 대표는 변한 것이 없었다. 느리면서도 조용한 말투, 해맑은 표정은 여전했다. 심지어 지난해 인터뷰 때 입었던 티셔츠와 똑같은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신 대표의 창업 동기는 단순하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와튼스쿨 출신인 그는 미국의 유명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2년 일한 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무작정 귀국했다. 이때가 티켓몬스터 시작 5개월 전. 처음 20여 개의 아이템을 놓고 고민했다. 멕시칸 스타일 음식점에서부터 인터넷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큰 시장에 진입하려면 큰 자본이 필요했고 작은 자본으로는 작은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데, 작은 자본으로 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중소기업을 위한 마케팅 서비스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티켓몬스터다.
월매출 220억 원…직원 600명
컨설팅 회사를 다녔으니 ‘모은 돈이 좀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업 자금은 창업 멤버 5명이 각자 100만 원씩 모은 500만 원이었다. 사무실 대신 2년 전 작고한 할머니의 집에 모여 5명이 숙식을 직접 해결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당시 1~2년 차라 연봉이 높지 않았고 뉴욕이라 집세로 월 200만 원을 낸 데다 그땐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던 때라 모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의 사례는 창업에 큰돈이 필수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티켓몬스터의 성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매출과 순이익이 늘었지만, 이를 다시 재투자하는 과정이다. 요즘에도 월 60~70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순이익은 인건비와 사무실 비용으로 다시 투자되는 것이다. 월 150만 원을 용돈으로 쓰고 있다는 신 대표는 “비교적 만족할 만한 생활수준”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돈이나 명예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자기 몰입형이다. “돈이나 단기간 성과에 초점을 두면 창업은 어떤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괴롭습니다. 멋진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즐겁습니다.”
티켓몬스터는 일반적인 회사라면 몇 년이 걸릴 성장을 1년 남짓한 시간에 경험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만, 시행착오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소셜 커머스가 급성장하면서 인프라 구축이 안 돼 고객 관리에 문제가 있었으나 빠르게 대응해 시스템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때 대응하지 않았다면 성장이 급격히 꺾였을 겁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는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 파고들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
1985년생.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졸업(비즈니스 전공). 2007년 인바이트 미디어 창업. 2008년 맥킨지컨설팅 입사. 2010년 티켓몬스터 창업(현 대표이사).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14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