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STX '하이닉스 인수' 격돌] '전광석화' 강덕수의 베팅
STX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힌 지난 7일 기자와 만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표정은 밝고 자신에 차 있었다. 질문을 던지자 강 회장은 차창을 내리고 "조만간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가 없었더라면 즉석에서 설명할 태세였다.

인수의향서(LOI) 제출 마감날인 8일,강 회장의 행보는 출전을 앞둔 '장수'를 떠올리게 했다. 점심도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 등 외부 출입을 자제한 채 집무실에서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이종철 ㈜STX 부회장,신철식 STX미래연구소 부회장,이호남 전략기획팀 상무 등 인수팀 주역들은 하루종일 분주했다. 수시로 강 회장 집무실을 오가며 LOI 제출을 위한 최종 조율을 했다. 이 상무가 향후 인수 · 합병(M&A) 일정 등 실무 작업을 보고하고,신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도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쳇말로 강 회장은 왜 하이닉스에 꽂혔을까.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분"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주력 사업인 조선 · 해양 부문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만큼 새 성장 동력을 모색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는 얘기다. 그는 "조선 · 해운 비중이 그룹 전체 매출의 90%가량"이라며 "사업 다각화는 늘 고민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STX그룹은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범양상선(STX팬오션)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하며 출범 10년 만에 재계 서열 14위까지 오른 기업으로 시장에 나온 매물엔 늘 관심을 보여왔다. 대우건설 때도 그랬고,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대한조선도 인수하려 했다. 하이닉스 역시 전략기획팀에서 주시해온 M&A 대상이었다.

강 회장은 글로벌 우량 제조업체에만 투자하는 아랍에미리트(UAE) 사모펀드(PEF)가 하이닉스를 공동 인수하자고 제안해오면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마련됐다고 판단한 셈이다. 인수 전략에 관한 양측의 합의가 마무리된 것은 한 달 전쯤.자금 확보 계획이 정해지자 강 회장은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 기간은 매우 짧았다. 계열사 사장들조차 인수 계획 자체를 몰랐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그의 이 같은 행보를 그룹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강 회장이 지금껏 내놓은 여러 수(手)들도 인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수 주체는 그룹 지주회사격인 ㈜STX로 제한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M&A 전략은 매우 심플하다"며 "계열사를 포함해 우량 자산을 매각할 계획이지만 계열사들이 재무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의 역량 범위 내에서,그리고 시장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동휘/이유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