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기술대 4학년생 정선아 씨(23 · 기계설계 · 자동화공학부)는 요즘 졸업 작품으로 낼 전기차의 마무리 작업에 매달려 있다. 방학인데도 틈틈이 학교 작업실에 나와 팀원들과 함께 이것 저것을 점검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이 전기자동차는 운전자 한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앉을 수 있는 크기다. 배터리를 이용해 시속 60㎞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한 번에 최대 1시간30분가량 달릴 수 있다. 차량 뒤편에 엔진을 달면 배터리와 엔진을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카가 된다. 연비는 ℓ당 30㎞ 정도 나온다.

정씨가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한 건 작년 9월,졸업 작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인 캡스톤 디자인(창의적 종합설계) 과목을 수강하면서부터다. 정씨는 곧바로 다른 학생 7명과 함께 팀을 만들었다. 총 8명의 팀원 중 6명은 기계 계열,2명은 전자 계열이다. 요즘 자동차 업계에서 기계와 전자제어가 융합되는 추세를 고려했다.

설계부터 제작,중간 발표(프레젠테이션)까지 모든 과정은 팀 단위로 진행된다. 제작비 일부는 학교에서 지원한다. 캡스톤 디자인 과제 한 건당 250만원이 나온다.

학생들은 이론 교육에선 얻기 힘든 경험을 하게 된다. 정씨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차체 무게를 줄이려면 프레임(틀)은 어떤 재질을 쓸지,배터리 위치는 어디가 좋을지….교과서만 봤을 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와 같은 팀인 황윤상 씨(25 · 전자정보공학과)는 "평소에는 장난감처럼 조그만 차를 가지고 전자제어 실습을 했는데 큰 차를 다뤄보니 더 실감난다"며 "다른 과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과기대에서 이들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해 캡스톤 디자인에 참여한 학생은 1247명으로 한 해 공대 졸업생(약 2000명)의 60% 수준에 달한다. 서울과기대에선 공대생이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 시대가 끝난 셈이다.

과제 수도 지난해 420개나 됐다. 자동차,로봇,기계장치 등 다양한 작품이 쏟아진다. 서울과기대는 국내에서 '캡스톤 디자인의 메카'로 통한다. 캡스톤 디자인이란 용어조차 생소한 1994년 교과 과목에 이 과목을 도입했고 이후 꾸준히 확대했다. 지금은 공대 16개과 중 12개과가 캡스톤 디자인을 한다. 전국 60개 대학이 참여한 공학교육 혁신사업에서도 서울과기대는 캡스톤 디자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박영일 서울과기대 기계설계 · 자동화학부 교수는 "2007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공학교육 혁신사업 이후 캡스톤 디자인이 전국 대부분 공대로 확산됐다"며 "학생이 중심이 돼 종합적인 설계 능력과 팀원 간의 소통 같은 소프트 스킬을 키우는 데 최적의 교육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종 경진대회도 열린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창의적 종합설계 경진대회','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공학설계 경진대회'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 단위로도 '인접대학 간 종합설계 경진대회'(경북대 등)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최흥진 경북대 교수는 "캡스톤 디자인은 학생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 가서 접하게 될 것을 미리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며 "기업들도 캡스톤 디자인을 한 학생들을 선호한다"고 평가했다.

최근엔 캡스톤 디자인이 진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학과 단위로만 진행됐지만 최근은 각 분야에서 융합이 중시되는 추세에 따라 캡스톤 디자인도 여러 학과 학생들,또는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함께 팀을 이뤄 공동 과제를 수행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태식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상무는 "융합형 인재를 키우는 데 대학이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자동차 업계의 경우 '메커트로닉스(기계+전자)형 인재'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데 신입 직원을 뽑아보면 기계도 알고,전자도 아는 인력은 5%도 채 안된다"고 지적했다.


◆ 캡스톤 교육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졸업논문 대신 4년간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졸업 작품'을 만드는 교육 과정이다. 보통 여럿이 팀을 이뤄 작품 설계부터 제작,프레젠테이션까지 마쳐야 한다. 창의적 종합설계로도 불린다. 외국에서 집을 지을 때 지붕이나 담 위에 마지막 얹는 갓돌(capstone)에서 유래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