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정준호가 1대1 교육…IOC위원들 '감명' 소리에 황홀
내년 한국서 MBA 코스 계획…2018년 스키대표팀 코치 맡고 싶어
어려서 동양인이라 놀림받아…스키복은 피부색 가려줘 좋았죠
골프 베스트스코어 4언더68타…찰리위·박지은·박세리와 친해
상기된 표정의 그를 보자마자 "We are so proud of you(당신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을 건네자 "감사합니다"는 한국말로 활기차게 답했다. 하룻밤을 묵고 9일 출국할 때까지 그와 인터뷰하려는 언론이 줄을 이었다. 환영행사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하느라 몹시 지쳐 보였지만,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가 기다릴까봐 서둘러 샤워만 하고 달려올 정도였다. 머리에 물기가 남은 채 나타난 그는 목이 마르다며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됐을 때 기분은.
"너무 흥분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여럿이 다가와 '대단한 연설이었다. 당신이 나의 투표를 바꿨다'고 말했죠.제 생애 대통령을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대통령께서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평창올림픽 확정 직후 이명박 대통령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눈 그의 사진이 세계 주요 언론에 게재됐다)
▼대표단으로부터 언제 연락을 받고 합류했나요.
"두 달 전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엔 제 국적이 미국이어서 망설였어요. 보름 뒤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죠."
▼프레젠터 참가로 받은 보수는 얼마나 됩니까.
"항공편과 숙박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
▼평창에 가본 적은.
"지난 2월에 가봤습니다. 휘닉스파크에 있는 모굴코스에서 이틀간 스키도 타봤는데 눈 상태가 좋더군요. 대회를 치르는 데 손색이 없어보였습니다. 개막식이 열리는 스키점프장에서는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뭉클했죠."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남아공에서 평창 홍보대사인 탤런트 정준호 형에게 코치를 받았습니다. 언제 말을 쉬어야 하고 어떤 제스처를 해야 하는지,저녁마다 준호형 방에서 특별레슨을 받았죠.형은 제가 발표하는 것을 보고 너무 딱딱하다며 감정을 실어야 하고,IOC 위원의 표정을 읽으면서 하라고 주문했어요. 너무 못하니까 화도 내더라고요. 나중에는 친해져 제가 형에게 스키를 가르쳐주고 형은 저를 영화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죠."(웃음)
▼남아공에서 여러 사람을 사귀었군요.
"너무나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이승훈,모태범과도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됐고….이번 기회에 제가 한국인이고 진짜 한국인이 돼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미국에서 요즘 하는 일은 뭡니까.
"콜로라도주 남부에 있는 포트루이스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재무학 전공이죠.4년 과정인데 2년에 마치기 위해 서머 스쿨까지 쉬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어요. 공부가 쉽지 않아,여유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 남아공으로 가기 전에도 숙제를 마치느라 정신없었죠."
▼한국에 있는 부모와 통화는 자주 합니까.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통화합니다. 방금 인터뷰 전에도 통화했고요. 언어 장벽 때문에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하고 기본적인 대화만 해요. "
▼양부모는 어떤 분들인가요.
"저를 입양하고 나서 외로울까봐 1년 뒤 저보다 한 살 어린 한국 아이를 또 입양했을 정도입니다. 어머니는 절 가르치기 위해 스키 강사를 그만둘 정도로 헌신적이셨죠."
▼동생도 한국인 부모를 찾았나요.
"동생은 저보다 1년 먼저 친부모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찾고 나서 더 큰 혼란에 빠졌어요. 그런 동생을 보면서 저도 많이 망설였죠.당시에는 부모가 저를 잃어버린 것인지,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전 운좋게 괜찮았지만 친부모를 찾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
▼자라면서 동생과 싸운 적은.
"엄청나게 싸웠죠.동생을 때리다 호되게 혼나곤 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둘도 없이 친한 사이지만요. "
▼피부색이 달라 정체성 혼란을 겪지는 않았는지.
"어릴 땐 힘들었어요. 주변의 놀림 때문에 한때는 백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스키복을 입으면 행복했어요. 제 얼굴이나 피부를 모두 가려주기 때문이죠.하지만 그런 감정들도 23세쯤 됐을 때 사라지고 편해졌어요. "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합니다. 김치 갈비 불고기 김밥 비빔밥 순대 등 못 먹는 것이 없어요. 미국인들이 기겁하는 낙지도 즐기죠."(그는 이날 밤늦게 떡볶이와 순대로 야식을 즐겼다)
▼한국에 와서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가요.
"공덕동에서 연탄불에 돼지갈비를 구워먹는 게 제일 좋아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과 함께 먹으면 끝내주죠."
▼한때 골프 선수를 꿈꿨다던데.
"지금은 아니에요. 드라이버샷은 300야드 정도 나가죠.베스트 스코어는 4언더파 68타인데 그 다음날 95타를 쳤어요. 일관되게 치지 못하는 게 문제죠."
▼친한 골프 선수가 있습니까.
"찰리 위(위창수)와 친하게 지냅니다. 박지은과도 20회 정도 라운드했죠.박세리도 잘 알고요. "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여름까지 공부를 마친 뒤 한국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공부를 하고 싶어요. 남아공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다들 '한국의 명문대에서 MBA를 하라'고 하더군요. 공부를 하면서 한국말도 배우고 스키대표팀 코치도 맡고 싶습니다. "
▼한국에서 이미 스타가 됐는데 영화배우까지 할 계획인가요.
"하하하.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
▼결혼 상대로 한국 여성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좋겠습니다. "
◆ 토비 도슨은, 양부모 헌신으로 美 스키 대표…토리노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 대표단 마지막 발표자로 나섰던 토비 도슨은 입양아로서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경험을 소개하며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래 이름이 김봉석인 그는 1978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따라 부산 범일동 중앙시장에 갔다가 미아가 됐고,보호소로 옮겨진 뒤 1982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양부모는 콜로라도주에서 스키 강사를 하는 백인 부부였다.
양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스키를 접한 그는 1998년 미국 국가 대표가 됐고,월드컵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프리스타일(모굴) 미국 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가 미국과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를 모았고 2007년 2월 생부인 김재수 씨와 상봉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