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구청의 건축인허가 담당 공무원이 장마철 집수리 얘기를 꺼내더군요. 안 해줄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피서지 콘도 부탁도 이어질 텐데…."

부동산개발업체 A사 임원은 "인허가를 앞둔 건설사나 개발업체에 엉뚱한 부탁을 하는 일부 공무원들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공무원들이 개발업체에 대한 생사 여탈권이나 다름없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만큼 부당한 요구라고 해도 타협하고 속으로 분을 삭일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각종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분양가 책정승인,청약기간과 방법 확정,공사 및 현장관리 등 모든 과정에 공무원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때문에 건설사나 시행업체의 인허가 담당자들은 합법적인 행정절차를 밟는 민원인이라기보다 담당 공무원을 상전으로 모시는 하인으로 행동하기 일쑤다.

개발업체 B사는 최근 서울 강남에 지을 다세대 주택의 층수를 1층 낮추고 3단 경사 형태의 지붕도 밋밋한 2단으로 바꿨다. 담당 공무원이 주변 경관과의 조화 등을 이유로 설계도면 전면 변경을 요구해서다. B사 임원은 "담당 공무원이 재량권을 근거로 무리하게 인허가 내용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혀를 찼다.

주택업체 C사는 분양과 청약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는 20가구 미만 소규모 사업에 대한 청약 일정을 다시 짜야 했다. C사 마케팅 팀장은 "구청 담당자가 '많은 소비자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1주일간 청약을 받으라'고 지시해 광고 · 청약 일정이 모두 뒤틀어졌다"고 토로했다.

한 개발업체 대표는 "인허가를 빨리 받는 방법은 바로 구청에 들어가 담당자 옆에 붙어 사는 것"이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설명했다. 잔 심부름이라도 하면서 환심을 사둬야 인허가 일정이 하루라도 당겨진다는 얘기다.

건설업체들로선 힘있는 곳과 접촉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고,인허가 업무는 각종 청탁과 비리의 온상으로 이어진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금품수수 혐의를 받은 직원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국토해양부는 비리를 막기 위한 내부 준칙을 발표하는 등 공직사회가 비리척결에 나섰다. 하지만 일선 건축 인허가 현장은 꿈쩍도 않고 있다.

김진수 건설부동산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