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소득 중에서 식품지출 액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계수라 한다. 그런데 최근 먹을거리 가격 상승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엥겔계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0년 기준 우리 가계의 엥겔계수는 13.86%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전체 평균이다. 가계를 소득 기준으로 5단계 분류하는 경우 최하위 20%인 1분위 가계의 경우 2010년 엥겔계수가 20.47%인데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의 경우 11.45%다. 그리고 엥겔계수에는 주류(酒類) 소비가 포함되지 않으므로 형편이 어려운 가계의 가장이 속상한 나머지 술을 구입해 집에서 마시는 경우 이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류 소비를 포함한다면 어려운 가계의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또한 1분위 가계의 경우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부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5분위 가계는 교육비 지출 비중이 가장 컸다.

그런가 하면 부채서비스비율 또는 채무상환비율이라는 통계도 이런 부분과 관련돼 있다. 흔히 DSR(Debt Service Ratio)이라고 부르는 이 비율은 가계 빚과 관련돼 있는데 가처분소득 중 부채의 원금과 이자 상환에 사용되는 액수의 비율을 나타낸다.

이 비율은 2010년 기준 전체 평균이 11.5% 정도로 엥겔계수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비율도 가계 소득별로 나눠보면 달라진다. 형편이 어려운 1분위 가계는 20.4%인 데 반해 가장 형편이 나은 5분위 가계는 9.1%이다. 그리고 이 비율도 엥겔계수처럼 소득이 올라갈수록 줄어든다.

주지하다시피 빚과 먹을거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선 먹어야 살 수 있을 것이고 빚을 갚아야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개인 파산(破産)을 면하면서 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피하기 힘든 지출로서의 식품소비 비율을 엥겔계수가 측정하는 것이라면 가계 부채가 유난히 부담스러운 수준이 돼 버린 현 상황에서 먹을거리 지출과 관련한 엥겔계수에 빚과 관련한 지출 비율인 DSR 비율을 더한 숫자를 '신(新)엥겔계수' 혹은 '엥겔Ⅱ계수'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처럼 피하기 힘든 지출의 비율로서 '엥겔Ⅱ계수'를 적용해 보면 이 숫자는 우리 가계 전체 평균 25% 정도다. 그러나 이 비율을 계층별로 보면 형편이 나은 5분위 가계는 20% 정도인 데 반해 형편이 어려운 1분위는 40%를 넘는다. '엥겔Ⅱ계수'가 드리우는 명암은 이처럼 극명하다.

복지는 바로 이런 차이를 전제로 출발하는 개념이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가계 간에 차이가 생길 때 상대적으로 나은 계층이 부담을 지면서 어려운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복지다. 따라서 복지는 결코 무상이 아니다. 돈이 드는 행위다. 또한 복지는 일부를 대상으로 해야지 전부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부담을 지는 쪽과 혜택을 받는 쪽이 분명해야 한다. 따라서 복지는 맞춤형이라야 하며 필요한 곳에 정확히 전달되는 '정밀 유도탄 복지'라야 한다. 먹을거리와 빚 상환에 소득의 20%만을 사용하고 80%를 다른 곳에 사용하는 여유 계층까지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른 통계를 보면 최상위 10% 여유 계층은 소득 대비 대학생 등록금 지출 비중이 8%대인 데 반해 최하위 10% 가계의 경우 이 비율이 45%대다. 이렇게 보면 '반값 등록금' 식의 지원정책은 고소득 계층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므로 '저소득층만 반값 등록금' 정책이 되도록 수정돼야 한다.

이처럼 '엥겔Ⅱ계수'의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으로 혜택이 가게 하는 것은 사치이자 낭비다. 복지에 보편이니 무상이니 하는 그럴 듯한 구호를 붙여가면서 호도(糊塗)하지 말고 어려운 가계에만 혜택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성을 되찾고 '엥겔Ⅱ계수'를 감안한 '정밀유도탄 복지정책'을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