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수(33)가 오는 20일 개봉하는 전쟁 영화 '고지전'에서 주인공 수혁 역을 해냈다. 장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올 여름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140억원을 투입한 대작이다.

6 · 25전쟁의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땅을 한 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남북 병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고지전투를 그렸다. 시사회 직후 강렬한 주제와 캐릭터를 소화해낸 '웰메이드 영화'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고수가 맡은 베테랑 중위 수혁은 기존 이미지를 뒤집는 강인한 남성상을 보여준다. 그동안에는 화제의 제약 광고와 영화 '초능력자' '백야행' 등에서 늘 수줍음이 많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12일 낮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이었어요.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갔죠.실제 상황 같았어요. 이 영화는 '우리는 왜 싸우는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예전부터 6 · 25전쟁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전쟁을 겪었던 한국인의 특권이니까요. "

영화에서 국군 병사들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기존 패턴을 벗어났다. 전쟁이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란 메시지가 관통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때로는 아군도 죽여야 한다. 수하 병사가 적에게 노출돼 총알을 맞고 죽어가도 방치한다. 그게 다른 군인이 사는 길이니까. 외딴곳에서 만난 적군의 여성에게 호의를 베푸는 순간 총알이 날아온다. 감상은 바로 죽음이다.

"수혁은 이런 전장의 생리를 터득했죠.그의 행동은 잔인하지만 살기 위한 본능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낼 겁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중대를 이끄는 리더죠.10회 촬영 때까지는 저도 모르게 수혁의 표정을 만들려고 억지로 힘을 넣었어요. 시행착오를 거쳐 상황에 깊이 몰입하니 연기가 한결 자연스러워지더군요. "

그는 매일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과 어울리고 호흡했다. 그 중심에 서면 화면에서도 리더가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다만 다른 영화들에서는 소통해야 할 필수 인원이 10여명 수준이었지만 여기에서는 100여명이나 됐다. 주요 출연자들만 해도 고수를 견제하는 라이벌 중위 역의 신하균을 비롯해 이제훈 류승수 류승룡 김옥빈 등 20여명에 이른다.

"폭파 장면을 촬영할 때 한 차례 사고가 났어요. 호흡이 맞지 않아 한 액션 배우가 얼굴을 다쳤어요. 다행히 대형 사고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이 다리를 삐거나 상처를 입었죠.굴곡진 교통호 사이를 구르고 뛰어다녔으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총으로 다른 배우를 때리기 일쑤였고요. 포항 전투 신을 촬영할 때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지에 볼일(?)을 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

겨울비를 맞으며 배에 갇힌 군인들을 촬영하는 신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용변을 보기 위해 배에서 내리면 그만큼 촬영이 지체되니까 군복을 입은 채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포항 전투신은 지난 1월 전남 고흥에서 촬영했다. 민둥산에서 펼쳐진 고지 쟁탈전 촬영은 함양 세트장에서 했다. 기간은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였다.

"함양 세트장은 산불이 두 번이나 나 폐허가 된 곳이었죠.불에 그을린 나무들도 많아 고지 전투신을 찍는 데 안성맞춤이었어요. 스태프들은 거기에 교통호를 미로처럼 팠죠."

그는 고생한 만큼 보답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사회에서 여성 관객들이 눈물을 많이 흘리더군요. 실제 같은 이야기에 공감하는 거죠.임팩트 있는 장면들에다 스토리텔링도 강력합니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