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거친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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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툇마루에 앉아있으니 습습하다. /목깃 터는 비둘기 울음 습습하다. /어둑신한 헛간 냄새 습습하다. /거미란 놈이 자꾸 길게 처져 내렸다/제자리로 또 무겁게 기어 올라간다…/어머니 콩 볶으신다. '(문인수 '장마') 비의 종류는 많다. 빗방울이 가장 작은 것은 안개비다. 그보다 약간 굵은 비는 는개라 한다. 이슬비는 는개보다 굵지만 가랑비보다는 가늘다. 맑은날 느닷없이 왔다 가는 여우비도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고마움을 담아 단비라 불렀다.
장맛비는 환영받지 못하는 비다. 워낙 질기게 내리는 탓에 몸은 처지고 기분은 개운치 않다. 인명과 재산 피해까지 낸다. '7월 장마 비오는 세상/다 함께 기죽은 표정들/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천상병 '장마')거나 '흐린날/누군가의 영혼이/내 관절 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이외수 '장마전선')로 표현되는 이유다. '가뭄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속담도 있다.
왜 장마라 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임우(霖雨)'란 말이 등장한다. 훈몽자회에 ' 마 림(霖)'이라는 주석을 단 것으로 미뤄 ' 맣'에서 장마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 '은 장(長)의, '맣'은 물의 옛말이다. 1981~2010년 중부지방 장마 시기는 6월24,25일~7월24,25일이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일 뿐 요즘 들어서는 예측불허다. 기상청도 2009년부터는 장마 예보를 그만뒀다. 6~8월을 그냥 우기(雨期)로 부르자는 의견도 내놨다.
올해 장마의 심술은 유별나다. 중남부를 오르내리며 대책없이 비를 뿌려댄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주 청주 등지에선 하루를 빼고 줄곧 비가 왔다. 서울도 보름간 내렸다. 중부지방 강우량은 593㎜로 예년 같은 기간의 4배에 가깝다. 인명 피해를 낸 건 물론 겨우 안정됐던 농산물 값이 급반등해 비상이 걸렸다. 장마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난화의 영향이라지만 반론도 많다. 왜 온난화인지,정말 온난화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잦은 기상이변을 '소빙하기'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딱 부러지는 이유를 아직은 모른다는 얘기다. 대책은 철저하게 세워야 겠지만 한편으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한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은 '비 온 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비가 왔는데 허공은 젖지 않고 땅만 젖었다. '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장맛비는 환영받지 못하는 비다. 워낙 질기게 내리는 탓에 몸은 처지고 기분은 개운치 않다. 인명과 재산 피해까지 낸다. '7월 장마 비오는 세상/다 함께 기죽은 표정들/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천상병 '장마')거나 '흐린날/누군가의 영혼이/내 관절 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이외수 '장마전선')로 표현되는 이유다. '가뭄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속담도 있다.
왜 장마라 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임우(霖雨)'란 말이 등장한다. 훈몽자회에 ' 마 림(霖)'이라는 주석을 단 것으로 미뤄 ' 맣'에서 장마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 '은 장(長)의, '맣'은 물의 옛말이다. 1981~2010년 중부지방 장마 시기는 6월24,25일~7월24,25일이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일 뿐 요즘 들어서는 예측불허다. 기상청도 2009년부터는 장마 예보를 그만뒀다. 6~8월을 그냥 우기(雨期)로 부르자는 의견도 내놨다.
올해 장마의 심술은 유별나다. 중남부를 오르내리며 대책없이 비를 뿌려댄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주 청주 등지에선 하루를 빼고 줄곧 비가 왔다. 서울도 보름간 내렸다. 중부지방 강우량은 593㎜로 예년 같은 기간의 4배에 가깝다. 인명 피해를 낸 건 물론 겨우 안정됐던 농산물 값이 급반등해 비상이 걸렸다. 장마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난화의 영향이라지만 반론도 많다. 왜 온난화인지,정말 온난화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잦은 기상이변을 '소빙하기'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딱 부러지는 이유를 아직은 모른다는 얘기다. 대책은 철저하게 세워야 겠지만 한편으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한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은 '비 온 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비가 왔는데 허공은 젖지 않고 땅만 젖었다. '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