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덴,후지쿠라,스미토모 등 내로라 하는 일본 인쇄회로기판(PCB)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는 중소기업이 있다. 주인공은 플라즈마 PCB 세정 장비를 생산하는 제4기한국(대표 백태일 · 52 · 사진)이다. 이 회사는 처리속도를 경쟁사의 2배 수준으로 높이면서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백 대표는 "플라즈마 세정장비는 화학 약품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미세한 이물질까지 제거할 수 있는 정밀 기술이 필요하다"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PCB업체들이 주문을 늘리고 있다"고 13일 말했다.

제4기한국의 세정장비는 PCB에 레이저 드릴로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기물이나 산화막 등 찌꺼기(smear)를 '제 4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플라즈마 이온으로 제거한다. 자체 개발한 전원 공급장치를 장착해 경쟁사 장비에 비해 2배 이상 처리속도가 빠르다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백 대표가 1991년 회사를 설립할 당시엔 '플라즈마'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였다. 반도체 세정에 일부 사용됐으나 PCB 공정엔 활용되지 않았다. 그는 PCB가 향후 반도체처럼 경량화 · 박막화되면 더 정교한 세정 장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3년여 연구 끝에 플라즈마 방식의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수요업체들은 화학 약품 세정이 보편화돼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새 장비를 구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판매에 열을 올리는 대신 기술에 대한 신뢰를 쌓을 방법을 찾았다. 안산에 장비 몇 대를 놓고 임가공 센터를 차렸다. 또 PCB를 만드는 기업들에 무료로 PCB 세정 처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처음엔 꺼림칙해 하던 기업들도 조금씩 마음을 바꿨고,곧 대규모 수주 물꼬가 터졌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전자산업이 발달한 일본,대만의 간판 기업에도 납품 길을 뚫었다. 작년 매출은 190억원.

백 대표는 요즘도 현장에서 '열공 중'이라고 했다. 스스로 '놀이터'라고 부르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수시로 방문,기술 개발 과정을 챙긴다. 회사 임원들과 엔지니어들을 모아 사내 공부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그는 "각 분야 담당자에게 개발 미션을 주고 정해진 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게 한다"며 "최근 태양광 박막 조직 개질(改質) 설비,공업용 폐기가스 무해처리 장치 등 플라즈마를 이용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도 그 성과"라고 설명했다.

백 대표는 "플렉시블한 PCB수요가 증가하면서 정밀 세정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며 "아직은 화학약품 세정 시장이 더 크지만 곧 플라즈마 세정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중국에 자회사를 세우고 중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도 그런 확신에서다.

그는 "올 하반기 코스닥 상장도 준비 중"이라며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기술로 업계를 선도하는 강소기업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천=정소람 기자 soram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