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서바이벌(survival) 열풍이다. 이 방송 저 방송 서로 베껴가며 경쟁을 벌여 더 이상 특이한 프로그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케이블방송인 Mnet의 '슈퍼스타K'로 시작한 서바이벌 혹은 오디션 열풍은 MBC가 '위대한 탄생'으로 불을 지폈고 지금은 이런 프로그램이 없는 방송국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이 새로운 방송 포맷을 통해 많은 새 얼굴들이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으니 콘텐츠 공급 측면에서는 다양한 원천이 생긴 공이 크다. TV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삶이 행복해졌다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치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 예선이 '즉결처분'처럼 냉혹해 정서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방송의 신입 아나운서 선발 프로그램은 일부 방송아카데미 출신들만 뽑혔다는 공정성 시비에까지 휘말리고 있다.

사실 방송국 종사자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21세기 들면서 새로운 콘텐츠 모델 개발이라는 화두에 매달려 살았다. 그렇게 찾은 것이 경쟁과 탈락을 골자로 한 서바이벌 모델이었다. 그러나 유행의 끝이 보이면서는 오히려 위기감이 퍼져가고 있다. '연출'이 실종되고 'PD'가 사라지는 추세가 이미 나타나고 있어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기존 방송물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질이 있다. 우선 시나리오가 상당히 개방적이다. 큰 틀은 유지되지만 결국 디테일(detail)은 출연자들에게 달렸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연출자 혹은 PD가 갖고 있던 '권력'이 상당히 희석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주인공과 스토리의 결정권은 오히려 전문적인 심사위원과 방청객,시청자들에게 넘어간 것이 이런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나는 가수다' 초기 탈락한 가수에게 원칙을 어기고 기회를 줬다는 이유로 담당PD가 교체된 것도 넓게 보면 이제 콘텐츠 권력이 이미 방송국 밖으로 나갔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서바이벌 다음 모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나날이다. 몇 가지 단초만 같이 공유하자면 큰 방향은 대체로 이렇게 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 콘텐츠 권력은 완전히 대중에게 넘겨야 한다. 포맷마저도 포기하는 결단이 그래서 필요하다. 사람들이 서바이벌 모델에 지루해하면 즉시 다른 모델로 넘어가야 한다.

콘텐츠 구성은 콘텐츠 주인과 그 주인을 '알아보는'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참여자 자신이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되고 평가자도 되고 구매자도 되고 유통자도 되는 파급력 높은 혁신이 가능해진다. 또 이왕이면 이 콘텐츠가 이미 나와 있는 모든 콘텐츠 플랫폼을 관통해야 한다. 끝으로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가 '글로벌'을 지향해야 한다.

서바이벌 모델은 사실 수입된 포맷이다. 외국에서 이미 성공한 모델을 갖고 와 한국식으로 안착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거기다 TV는 이미 젊은이들의 매체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적인 성공모델은 인터넷과 스마트폰,그리고 태블릿PC에서 나오게 돼 있다. 디지털 시대 방송의 대회전은 이제 시작이다. 서바이벌 다음을 찾는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