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공포가 확산 일로다.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으로 빠르게 전염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국제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아일랜드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수준으로 강등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핵심인 프랑스에까지 재정위기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평사와 투기세력 위기 키워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은 12일 "무디스가 아일랜드의 국가신용등급을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으로 한 단계 하향했다"며 "그리스와 포르투갈에 이어 아일랜드까지'정크'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추가적인 지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이유다. 전날 이탈리아 · 스페인 등의 국채 금리가 역대 최고치로 급등하며 커진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시기도 전에 무디스가 유로존에 또다시 타격을 입힌 것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유로존 국가에 대한 신용평가 금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 무디스는 아일랜드 등급을 강등시켰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유로존 각국은 "신평사들이 유럽 재정위기의 주요 분기점마다 변방국의 신용등급을 내리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반발했다.

실제 지난달 말 그리스 의회에서 긴축안이 통과돼 재정위기 우려가 한숨을 돌리자마자 신평사들은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을 경고했고,지난주엔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강등한 바 있다.

투기세력의 변방국 국채 투매도 지속될 조짐이다. 로이터통신은 "주요 헤지펀드들은 이탈리아의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볼 뿐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붕괴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투매한 이탈리아 국채는 전체 보유 지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투기세력들의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로존은 지도력 부재 상황을 노출하고 있다. 디차이트는 "브뤼셀(EU 지도부)은 지금 패닉 상태"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15일 긴급 EU 정상회의가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치권,뒤늦은 불끄기

각종 부패 스캔들과 긴축안에 대한 총리와 재무장관 간 불협화음으로 위기 확산을 촉발했던 이탈리아 정치권은 뒤늦게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과 유로화의 미래를 위협하는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다"며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국민의 단결과 '희생'을 호소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2014년까지 재정 지출을 총 400억유로 줄이는 긴축안의 의회 통과를 주장했고,이탈리아 야당도 "이탈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5일 안에 예산안 심사를 끝내 15일까지 긴축안을 통과시키겠다"며 호응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로존 핵심국인 프랑스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년물 프랑스 국채 금리가 독일 국채에 비해 0.7%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프랑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급등했다.

프랑스 금융권이 이탈리아 최대 채권단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24개국 은행들이 총 8673억달러 규모 이탈리아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34% 가량을 프랑스(2926억달러)가 지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유럽 대형 은행들이 유로존에서 한두 개 국가가 탈퇴할 것을 상정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