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가이드 리시 싱(27)은 교수들 앞에서 "한국과 인도는 1900년 전부터 좋은 사이였다"며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 야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한 설화를 어눌한 한국 말로 풀어나갔다. 그는 "이제 현대자동차와 LG전자가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인도는 멀지만 가까운 나라다. 인도 가전제품의 60%가량은 삼성,LG전자가 현지에서 만든 제품이다. 현대차는 시장점유율(20%)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부 첸나이시는 '인도 속 한국'이었다. 지난 2~3년간 삼성전자 2공장,롯데제과 공장 등이 들어서며 한국 기업 수가 200여개로 늘었다. 11억명의 거대 황금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전초기지다.

주재원들은 찜통 더위와 자주 끊어지는 전력,수돗물로 양치질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식수난 등 어려운 환경에서 땀흘리고 있었다. 지난 4~10일 인도 첸나이와 뉴델리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영학회의 하계 학술대회에 참가한 80명의 교수들은 "이런 험지에서 고생하는 줄 몰랐다. 애국자가 따로 없다"는 소감을 쏟아냈다.

기업 주재원들은 우리 정부로부터 '찬밥'대우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주재원은 "인도 당국에 비자 연장 신청을 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다"며 "총영사관이 있었더라면 이 정도는 아닐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첸나이 교민 수가 3200여명으로 뉴델리와 비슷하고 뭄바이보다 훨씬 많은데 영사관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뭄바이는 인도 최대 경제도시이지만 교민 수는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작년 1월 한국과 인도는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맺었다. 그해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기업인들은 "첸나이에 총영사관을 설치해달라"고 건의했다.

외교통상부는 그때부터 총영사관 개설을 검토했다. 1년이 훨씬 넘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외교부는 "내년에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주재원들은 내년에 또 '내년에 검토 중'이란 답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 교수는 "비즈니스 외교를 외치는 정부가 첸나이 같은 곳에 총영사관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장진모 첸나이/산업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