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챔피언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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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작업장에서 구두를 만들다 독한 본드 냄새에 뇌가 망가진 초기 치매환자 아버지,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으로 불화를 겪다 도망간 엄마,푸른 곰팡이로 뒤덮인 지하 월세방.나는 배가 너무 고파 300원짜리 크림빵을 훔쳐먹고 스스로의 뺨을 때리며 울던 14살 소녀였다. '
세계 여자 프로복싱 5개 기구 통합 챔피언인 김주희 선수(25)가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 '할 수 있다,믿는다,괜찮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원래 꿈은 마라토너였다.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중학교 때 그만뒀다. 고등학생 언니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느라 연습비를 낼 수 없는데다 먹지 못해 자꾸 쓰러졌다.
언니가 준 돈 10만원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거인체육관에 찾아갔다. 1999년 겨울이었다. 그곳에서 그의 성실과 집념을 알아본 정문호 관장을 만났다. 남보다 적은 적혈구 탓에 조혈제를 먹으면서 매일 15㎞씩 뛰었다. 2002년(16세) 국내 첫 여자 프로복서로 데뷔한 뒤 2004년(18세)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후 각종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타이틀 방어전을 치를 때마다 발톱이 6~8개씩 빠졌다. 2007년 염증으로 엄지발가락 뼈를 1.5㎝ 잘랐다. 다들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했다. 지독히 아프고 외로웠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에 있던 약을 모두 먹어버렸다. '
고통을 끝내겠다던 작정과 달리 살아난 뒤 그는 더 치열해졌다. 지난해 9월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세계복싱연합(GBU) 세계복싱연맹(WBF) 등 4개 기구 통합 지명 방어전 겸 여자국제복싱평의회(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웃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몄다.
그는 9일 전남 완도에서 열린 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전에서 판정승을 거둬 세계 5개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됐다. 지난해 9월 이후 들어온 후원 제의조차'훈련을 게을리할까 봐 대부분 거절했다'는 그가 책에 남긴 한마디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울던 소녀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든 힘이 무엇인지 전하고도 남는다.
"링에서도 인생에서도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된다. 두렵다고 눈을 감아선 안 된다. 그런다고 벌어진 일을 피해가진 못하니까. 아무리 무서워도 눈 똑바로 뜨고 맞서야 한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세계 여자 프로복싱 5개 기구 통합 챔피언인 김주희 선수(25)가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 '할 수 있다,믿는다,괜찮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원래 꿈은 마라토너였다.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중학교 때 그만뒀다. 고등학생 언니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느라 연습비를 낼 수 없는데다 먹지 못해 자꾸 쓰러졌다.
언니가 준 돈 10만원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거인체육관에 찾아갔다. 1999년 겨울이었다. 그곳에서 그의 성실과 집념을 알아본 정문호 관장을 만났다. 남보다 적은 적혈구 탓에 조혈제를 먹으면서 매일 15㎞씩 뛰었다. 2002년(16세) 국내 첫 여자 프로복서로 데뷔한 뒤 2004년(18세)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후 각종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타이틀 방어전을 치를 때마다 발톱이 6~8개씩 빠졌다. 2007년 염증으로 엄지발가락 뼈를 1.5㎝ 잘랐다. 다들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했다. 지독히 아프고 외로웠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에 있던 약을 모두 먹어버렸다. '
고통을 끝내겠다던 작정과 달리 살아난 뒤 그는 더 치열해졌다. 지난해 9월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세계복싱연합(GBU) 세계복싱연맹(WBF) 등 4개 기구 통합 지명 방어전 겸 여자국제복싱평의회(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웃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몄다.
그는 9일 전남 완도에서 열린 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전에서 판정승을 거둬 세계 5개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됐다. 지난해 9월 이후 들어온 후원 제의조차'훈련을 게을리할까 봐 대부분 거절했다'는 그가 책에 남긴 한마디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울던 소녀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든 힘이 무엇인지 전하고도 남는다.
"링에서도 인생에서도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된다. 두렵다고 눈을 감아선 안 된다. 그런다고 벌어진 일을 피해가진 못하니까. 아무리 무서워도 눈 똑바로 뜨고 맞서야 한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