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항공기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된 때는 1962년이다. 각종 운항 자료와 조종실 대화 내용을 저장하도록 했다. 2002년까지는 29가지 정보만 담았으나 이젠 비행기 항로를 비롯 속도 고도 성능 등 90여가지가 기록된다고 한다. 요즘엔 택시 버스 자가용 등 자동차에도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게 유행이다.

사람의 위치정보를 확인해온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고대 유가(儒家) 경전에도 행선지를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자식이 지켜야 할 도리로 규정했다. '자식은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부모에게 행선지를 알려드리고,돌아와선 꼭 얼굴을 뵈어야 하며,나가 있는 곳은 늘 일정해야 한다'는 게 '예기'의 가르침이다. 시쳇말로는 '네 위치정보를 부모에게 알려라'다.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의 위치정보는 대단히 정밀하다. 위치정보확인시스템(GPS)을 통해 부모가 자녀의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있다. 자녀의 행동반경을 지정해 이를 벗어나면 부모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한다. 상대방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어디야?'를 요청하면 상대방이 '나 여기!'로 현 위치를 응답하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됐다. 운전 중 전화를 해 목적지를 묻고 메모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섀도'라는 앱은 스마트폰에 전화번호가 저장된 사람 가운데 45m 안에 있는 이를 모두 찾아준다.

문제는 사생활 침해나 범죄 악용 우려다. 스마트폰의 개인 위치정보 축적이 이슈화된 가운데,위치 추적을 당한 아이폰 사용자에게 애플이 위자료를 물어주라는 법원 결정이 내려졌다. 이미 애플코리아가 '5개월간 사용'에 대한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국내 아이폰 및 아이패드 사용자가 300만명 수준이라 집단소송 가능성도 있는 모양이다.

사생활 침해를 막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녀사냥식 대처는 곤란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위치정보 서비스는 이미 모바일 시대를 대표하는 '킬러 앱'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의 70%가 위치정보와 관련된다는 조사도 있다. 시장규모가 2013년엔 133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새로운 기술에는 예상치 못한 장 · 단점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위치정보 서비스 역시 신기하고 편리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산업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해법을 서둘러 찾아야 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