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하늘과 원색의 언덕.그 사이에 껑충 솟은 한 그루 나무 옆으로 얼룩소 한 마리가 느긋하게 걸어간다. 조그만 교회당의 빨간 지붕 위 첨탑을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하늘색 물감이 주르륵 쏟아져내릴 것만 같다.

독일 남쪽 끝 소도시인 무르나우의 초원 풍경이다. 북부 알프스의 산들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전원은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방불케 한다. 그래서였을까. 유럽 각지의 숱한 화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알프스를 모티브로 창작의 세계를 마음껏 펼쳤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였던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는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 함께 이곳으로 화실을 옮겨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무르나우의 산과 들,나무를 그렸다. 이들은 무르나우에서 예술가 집단인 '청기사(블라우에 라이터) 그룹'을 결성했다. 클레,야우렌스키,마르케,쿠핀 등이 가세하면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며 현대 추상화의 기반을 닦았다.

영화 '지킬박사와 하이드'(1920),'파우스트'(1926),무성영화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선라이즈'(1927) 등을 만든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감독(1889~1931)은 '플룸페'였던 성(姓)을 고향의 이름을 따서 바꿨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티끌 한 점 없는 무르나우의 푸른 하늘이 마냥 부럽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