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끝> 중국은 110년 전에도 '세계의 공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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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게 '팍스 차이나' 시대 될까
1830년대 세계 제조업 30% 차지
美에 밀리다 덩샤오핑 집권후 재도약
빈부 격차ㆍ고령화가 지속성장 '발목'
1830년대 세계 제조업 30% 차지
美에 밀리다 덩샤오핑 집권후 재도약
빈부 격차ㆍ고령화가 지속성장 '발목'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과연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인가,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언제쯤 일어날 것이고 또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경제사학자들 중에는 과거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한 지역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같은 책을 두고 당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대륙' 유럽의 여행자가 가장 잘 사는 지역인 중국을 다녀온 기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21세기에 중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세계사의 정상성(正常性)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경제조사기관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자료를 인용, 지난해 중국이 전 세계 제조업 생산액의 19.8%를 점유해 19.4%에 그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제조업 국가가 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가 된 것은 19세기 말 이 자리에서 밀려난 지 110여년 만이라고 FT는 보도했다.
경제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1830년대만 해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 대국이었지만,19세기 중반부터 산업혁명의 선구자인 영국에 밀렸다. 19세기 말부터는 미국이 수위를 차지해 왔다. 또 국민총생산(GDP)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앞질러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고 2025~2030년께 미국을 추월,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중국 경제가 재도약을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은 1978년 이후다. 그는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등 4대 분야의 근대화를 서두르는 한편 세계시장에 중국 경제를 진입시켰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그런 과정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1984년부터는 도시 부문까지 개혁이 확대돼 그동안 거의 자취를 감췄던 소상인층이 다시 등장했다. '문화혁명' 이후 농촌으로 쫓겨났던 자전거 수리인,이발사,신발 수선공 같은 사람들이 다시 도시의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4년에는 사유재산이 헌법상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받았다. 비교적 자율성을 가진 주식회사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은행에 대한 국가의 규제도 많이 풀리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 국가인가.
용어 사용은 늘 까다로운 문제다. 중국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는 '시장 사회주의'다. 마찬가지로 '자본가'라는 말 대신 '애국적인 기업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특히 이 용어는 현 중국의 국가주의적 상황을 아주 잘 말해 준다. 중국에서 경제 발전은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보다는 국가의 위대함과 더 관련이 크다.
사업가들 중에는 당 간부 출신이 많다. 자연히 부패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완전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따라서 당과 국가는 '잘 나가는 사업가'들을 용인할 수도 있고 언제든 처벌할 수도 있다. 일찍이 브로델 같은 역사가는 중국에서 서구식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황제체제로 대변되는 정치 질서가 경제 질서보다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성향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낙관주의자들은 이미 개혁이 오래 지속됐고,1997년 위기도 무사히 넘길 정도로 각 부문에서 탄탄한 성장을 지속해 왔다는 점을 들며 중국 경제의 성장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주장한다. 20년 넘게 연 9%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온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비관론자들은 근대화는 미완성인 반면 불균형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국가 주도 기업들은 대부분 적자고,은행은 부실 대출로 위험한 상황이며,사유재산 보호도 아직 불확실하다. 성장 가도를 달리는 해안 지역과 뒤처진 내륙 지역 간 격차도 지나치게 벌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한 자녀 낳기를 강요하다 보니 조만간 인구 노령화가 재앙 수준의 문제를 일으킬 염려도 크다. 게다가 노동 조건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 탄광 노동자 같은 경우 강제로 억류된 채 임금도 못 받고 심지어 맞아 죽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서 거의 과거 노예제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렇다면 이 체제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격화되지 않을 것인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중국의 경제 자유주의가 정치 · 사회적 자유주의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국 중산층들의 열망은 소비 확대에 맞춰져 있다. 지나친 부의 과시를 천박한 것으로 여기던 1920~1930년대 부르주아와는 사정이 다르다. 기업가들은 사회 안정과 경제 번영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정부와 의견을 같이한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많이 축출됐거나 통제 상태에 있다. 이런 막무가내식 성장 일변도의 대국 옆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민족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재앙이 될지,축복이 될지는 많은 부분 우리가 하기 나름일 터이다.
대륙과 해양의 경계에서 균형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에는 불확실한 점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방향을 잡기 위해 참조할 역사적 경험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거대한 터키 제국을 상대로 하며 번영을 누렸던 베니스,프랑스 · 영국 · 독일 등 강대국들을 조정하며 한때 세계 최고 경제 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네덜란드 같은 사례들을 면밀히 연구해 봄직하다. 역사 연구는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에 지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