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명문대 교수인 A씨(50)는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 지난해 전세로 들어왔다. 그는 강북에 집이 한 채 있지만 작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했다. 강북 자택은 다른 사람에게 전세로 내줬다.

◆강남 세입자 40% "다른 곳에 집 있다"

15일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인구 · 주택 부문)' 자료에 따르면 A씨처럼 다른 곳에 있는 집을 전세 또는 월세로 내주고 서울 강남 · 서초 지역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가구가 이 지역 전세 거주자의 40%를 넘었다.

서울 강남 · 서초의 전세 가구 가운데 다른 지역에 집을 갖고 있는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5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28%대에 불과했다.

서울 양천구는 전세 입주자의 32.1%,송파구는 30.3%가 다른 곳에 '내 집'을 갖고 있었다. 서울 전체로는 전세 가구 4곳 가운데 1곳(24.3%)이 유주택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2005년(14.5%)보다 10%포인트가량 늘었다.

경기도에서는 과천이 40.5%로 가장 높았고 분당 37.4%,의왕 31.6% 순이었다. 전국 단위로는 지난해 전세입자의 타지 주택 보유 비율이 21.9%로 2005년(14.2%)에 비해 7.7% 증가했다.

◆집값 급등이 전세 증가 원인

전문가들은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사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2005년과 2006년 집값 급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교육 및 주거 환경이 뛰어난 서울 강남 · 서초 지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집을 사는 데 부담을 느낀 중산층이 다른 곳에 있는 자기 집을 놔둔 채 전세로 '강남'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대표는 "적어도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세입자=저소득층'의 등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100㎡(30평)형대 아파트를 8억원이 넘는 전세금을 주고 사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용면적 84~85㎡(30평대) 기준 전셋값은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7억5000만~8억5000만원,도곡동 도곡렉슬 7억~7억5000만원,잠실 레이크팰리스 5억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평균 전세값은 강남구 3.3㎡당 1252만원,서초구 1153만원,송파구 969만원이다.

◆전세값 연쇄 상승으로 이어지나

전세 가구 중 유주택자가 많다보니 전세가격의 변동과 확산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송인규 부동산국제마스터 연구소장은 "자신이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라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집을 갖고 있으면 전세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다른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된다"며 "전세가격 변동과 확산 속도가 과거보다 빨라진 데에는 유주택자의 전세 입주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같은 주거 형태의 구조적인 변화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향후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