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ART] 첼로 거장 마이스키와 20대 정상희…브람스 선율로 유럽관객 사로잡다
'작은 프라하'로 불리는 체코 보헤미아주 남쪽의 체스키 크룸로프.16일 저녁(현지시간) 둥근 달이 모습을 드러내자 체스키 크룸로프 성 옆 언덕길은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날 밤 개막한 제20회 체스키 크룸로프 뮤직 페스티벌의 두 번째 주자들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청중이다.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62)와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 씨(23)는 이날 프라하라디오심포니오케스트라와 베토벤 3중 협주곡,브람스 2중 협주곡을 협연했다. 베토벤 협주곡은 마이스키의 딸이자 피아니스트인 릴리 마이스키(24)가 함께해 더욱 관심을 모았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은 두 개의 독주 악기에 고도의 기교가 요구되는 곡.호흡이 잘 맞는 두 명의 독주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1악장 알레그로에서 마이스키가 독주 첼로로 카덴차를 강렬하게 던지자 정씨는 독주 바이올린 카덴차로 재빨리 뒤따랐다. 기교 넘치는 선율에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지자 청중은 숨을 멈췄다.

3악장 마지막 마디를 연주하던 중 마이스키의 네 번째 첼로 줄이 '툭'하고 끊어졌다. 1000여명의 청중은 작은 숨소리를 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바이올린 협연자 정씨는 차분하게 눈을 감고 현을 끝까지 그었다. 이날 마이스키는 악기 뒷면에 달아놓은 검정색 수건으로 10여차례나 땀을 닦으며 열연했다. 두 사람은 일곱 번의 커튼콜과 전원 기립박수를 받았다.

정씨는 공연에 앞서 "브람스 협연은 처음이라 떨린다"고 했지만 특유의 침착함과 안정된 기교로 마이스키와 호흡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20대 신예 바이올리니스트의 눈빛은 60대 거장 첼리스트의 손놀림만큼이나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꿈꾸는 것 같아요. 영광스럽죠.(마이스키가) 참 다가가기 어려운 대스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유머도 많고 순수해서 놀랐어요. 음악에 대한 존경심도 엄청나서 배울 점이 무한하고요. 어제 오후까지도 전화 통화로 '나 지금 열심히 첼로 연습해야 하니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대가들은 연습도 안할 줄 알았거든요. "

공연이 끝난 후 정씨는 "어릴 때 무대공포증이 있었는데 큰 무대에 반복해 서니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예고 재학 중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수석으로 입학,에드바르트 치노프스키 교수를 사사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립교향악단,독일 뉘른베르크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활발히 연주하고 있다. 마이스키와의 만남은 2009년 독일 뉘른베르크심포니오케스트라와 베토벤 3중 협주곡을 협연한 이후 두 번째다.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마이스키는 분장실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젊은 음악가와 한 무대에 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 역시 여전히 젊지 않으냐.오늘 세계유산이기도 한 이 아름다운 곳에서 훌륭한 하모니를 이뤘다. 이렇게 공연할 수 있으니 아직도 내 심장은 소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며 한 해 평균 100회 정도의 공연을 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음악에서 나온다"며 "많은 사람들과 되도록 많은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마이스키에게 리허설 도중 '같이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여러 번 말씀 드린 적 있다. 그는 '브람스가 이렇게 멋진 곡을 썼기 때문이다. 브람스에게 영광을 돌리자'고 했다.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멋진 분"이라고 얘기했다.

'체스키 크룸로프 뮤직 페스티벌'은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여름 음악 축제다. 올해는 20주년을 기념해 15개의 콘서트와 6개의 공연,14팀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앙상블,30명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멕시코의 세계적 테너 라몬 바르가스가 15일 성황리에 문을 열었고 재즈 스타 아르투로 산도발 등을 거쳐 내달 20일 오페라의 왕 플라시도 도밍고의 무대로 막을 내린다.

체스키 크룸로프(체코)=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