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유럽연합(EU) 역내에 있는 40개 해상풍력발전 관련 단체들이 모여 'UPWIND'라는 프로젝트를 발족시켰을 때의 일이다. 타워 높이 153m,로터블레이드(날개) 반경 253m에 이르는 20㎿급 해상풍력터빈을 2020년까지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는데 당시 UPWIND 측에선 언론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 등 아시아 업체들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

요즘 국내 풍력발전 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나라는 덴마크다. 해상풍력 분야 세계 1위 베스타스가 덴마크계이고,이 회사가 한국에서 부품을 사들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거꾸로 한국 풍력발전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反)풍력발전 운동을 주도하는 국제시민단체에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이 덴마크 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세계 조선산업을 제패한 한국 기업들이 해상풍력 사업에 뛰어들자 유럽 기업들이 위기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해상풍력 주도권 다툼

유럽에 비하면 한국의 해상풍력터빈 기술은 걸음마 단계다. 올 4월까지 누적 기준(세계풍력산업협회 자료)으로 운영중이거나 건설중인 해상풍력발전의 80%는 유럽에 꽂혀 있다.

기술면에서도 UPWIND가 상용화하려는 20㎿급은 우리로선 엄두를 못 낸다. 두산중공업이 국내업체 중 처음으로 올 하반기 3㎿급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실증 단계를 거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에 진입해 있는 제조업체를 보더라도 '코리아'는 전무하다. 해상풍력발전을 상용화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7개다. 베스타스(덴마크)와 지멘스(독일)가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윈드파워 두산중공업 효성 등 11개사가 해상풍력발전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제품 개발 단계에 있다.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보이는 데도 유럽 기업들의 한국을 향한 경계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홍은성 재료연구소 풍력연구센터 실장은 "학술 세미나에 나가면 덴마크,독일계 주요 풍력 제조업체들은 한국 연구원들에게 자료조차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럽 풍력발전 성능 평가,인증 기관들이 모여 만든 'MEASNET'라는 단체만 해도 미국 외에는 EU 역외 국가들은 가입이 불가능하다.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으로 기술이 빠져 나간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베스타스가 부품 조달을 위해 공청회를 열곤 하는데 국내 조선업체 등 대기업에서 개발한 제품은 출품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후발주자 한국,"유럽 잡는다"

유럽은 왜 한국을 경계하는 것일까. 홍 실장은 "한국 때문에 유럽의 조선산업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풍력발전산업 덕분에 살아나고 있다"며 "또다시 한국에 발목을 잡힐까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독일을 대표하는 조선업체로 1635년 설립된 지타스는 한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한때 문을 닫을 뻔 했지만 해상풍력발전 설치용 특수선으로 새 기회를 잡았다. 지난 5월엔 1억유로짜리 특수선을 수주하기도 했다. 요트 제조에서 글로벌 수위를 다투던 독일 SGL그룹도 2007년 풍력발전기용 로터 블레이드(날개) 전문업체로 변신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한국이 해상풍력발전 분야의 후발주자인 것은 맞지만 시장에 뛰어든 업체 대부분이 조단위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라며 "조선,플랜트 등 중공업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으면서 막강한 부품공급망을 갖고 있는 것도 한국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