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사건건 갈라서서 다투던 여야가 갑자기 한 목소리로 '중소기업 찬가'를 부르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무척 고심하여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회심작을 만들어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이를 낚아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입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의 중소기업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 헌법까지 동원해 지난 주에 '헌법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총선과 대선이 몰려 있는 내년 표밭에 야당이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리니 여당인들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정부와 손잡고 비슷한 선물보따리를 연달아 풀어놓고 있다.

정치권이 한참 호들갑을 떠는 중소기업 보호는 사실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대기업 주도의 조립가공 산업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은 태생적 약자였기에 우리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써왔다. 그래서 어려운 중소기업을 돕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열기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논리에 너무 휘둘리는 일과성 해프닝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 생색을 내는 중소기업 적합 · 고유업종 제도는 오랫동안 시행하다가 득보다 실이 많아 2006년에 용도 폐기한 것이다. 기업은 불량품을 절대로 다시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불량판정을 받은 이 제도를 내년 선거 대목을 앞두고 다시 출시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솔직히 이 제도는 다시 시행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표밭에 마음이 가 있는 정치권을 볼 때 도저히 유턴할 것 같지 않아 한마디 당부한다면,고유업종 선정은 중소기업 보호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갖고 철저히 경제논리로 해야 한다.

만약 선심성 정치논리가 앞서 우리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핵심 분야를 마구잡이로 지정하면 세계화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고유업종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대기업은 글로벌소싱으로 수입부품을 쓰고,소비자도 값싼 중국제를 선호할 것이다.

외국 기업,특히 우리를 따라온 중국기업이 고유업종에 투자하겠다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잘못하면 '우리'의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의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고유업종에 대한 수입과 외국인투자도 같이 제한해야 하는데,세계무역기구(WTO) 시대에 그랬다가는 외국과 통상전쟁을 하느라 통상교섭본부를 두 배쯤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려되는 것은 경제논리로 움직이던 과거와 달리 중소기업육성에 대기업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대기업횡포-중소기업 보호'라는 제로섬 게임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하면 사회전반의 '대기업 후려치기'로 변질되어 경제의 성장동력을 훼손하고 일자리의 해외탈출을 부추기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오늘날과 같은 지구촌경제에서 정부와 재벌은 서로 칼날의 양면을 쥐고 있다. 재벌의 탈세나 비자금 같은 위법행위에 대해선 정부가 가차 없는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하지만,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요즘처럼 윽박질러선 안 된다. 만약 반기업정서가 판치면 대기업은 한국보다 훨씬 투자환경이 좋은 중국이나 동남아에다 공장을 지으려 할 것이다.

'100일 특강,서울대 합격보장'이란 광고가 가끔 학원가에 붙는다. 이건 사기성이 농후하다. 어찌 100일을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간단 말인가.

중소기업 육성도 마찬가지다. 화끈한 묘책이 없다. 정부와 정치인,재벌이 관심을 갖고 기술개발,해외시장개척 등을 꾸준히 도와주고,중소기업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할 때 결실이 맺어질 것이다. 어렵지만 이것이 정도(正道)이다.

안세영 < 서강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