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헌법 119조 1항 '경제자유'에 주목해야
요즈음 정치권이 앞다퉈 쏟아내는 정책을 보면 머지않아 공룡 같은 거대한 국가권력이 등장하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상 복지 시리즈를 비롯해 친 중소기업,양극화 문제에까지 정치권은 앞다퉈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헌법 제119조를 경쟁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119조를 입에 달고 다니고 민주당은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라는 당내 기구까지 발족시켰다.

좌파 정당들이 적용하는 헌법조항이 흥미롭다. 119조를 구성하는 두 개의 항 중에서 경제자유를 중시하는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문구는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에 간섭할 수 있도록 국가에 폭넓은 문을 열어놓은 2항 만이 보일 뿐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게 2항의 내용이다. 좌파들은 이 조항을 걸고 경제적 번영과 화합을 위해 정부 개입과 국가 만능을 추구할 태세이다.

이쯤에서 보면, 거대한 정부권력 앞에서 왜소해진 개인과 기업의 처량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의 자유는 여지없이 유린되고, 기업가 정신은 소실된다. 투자의욕은 감퇴하고,경제 활력도 떨어진다. 민생은 피폐되고 정부의 복지지출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계층만 늘어날 뿐이다. 정부권력이 커지면 편가르기와 편들기의 정치적 과정은 필연적이고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공동체 의식은 소멸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가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경제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프레이저연구소의 연구가 뚜렷이 보여준다. 규제가 적을수록,세금이 낮고 정부지출이 적을수록,즉 정부권력이 제한되어 경제자유가 많을수록 1인당 소득도 높고 부패도 적다. 시민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자유로이 활동하는 사회에서만이 도덕도 형성되고 공동체 정신도 투철해진다.

우리가 직시할 것은 1960년대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100달러도 못되는 척박한 경제에서 2만달러의 번영된 경제로 이끈 것도 헌법119조 제1항이 담은 경제자유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과 개인들이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노력으로 재산을 키우고 기업을 일궜던 건 바로 경제자유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정부주도로 한국경제가 발전했다는 좌파의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 좌파의 가슴이 쓰리겠지만, 경제자유 때문에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1항을 무시하고 2항만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좌파의 무지를 넘어서 한국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반(反) 헌법적이 아닐 수 없다. 끔찍스럽게도, 한국의 역사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리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경제헌법에는 잘못이 없다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권력구조를 정하는 기능에 치중한 나머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기능을 등한시했다. 1987년 9차 개헌에서,정부를 우리 손으로 직접 선출하면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119조 2항과 같이 정부에 광범위한 규제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이 난무함에도 이를 막지 못하는 이유도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국민들이 번영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는 그들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는 '온정주의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국가권력이 제한된 사회이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경제헌법을 갖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민경국 < 강원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