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리 단선적인 얘기들만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이 시작되자 온통 '리스크' 타령이다. 경기 부침이 심한 업종인데도 매년 조 단위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상투적인 분석들이 줄을 선다. 그 바람에 하이닉스는 대단히 위험한 기업으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게 됐다. 인수전에 뛰어든 SK텔레콤과 STX 주가도 많이 빠졌다. 지난해 효성이 단독으로 인수에 나섰을 때도 똑같은 분위기였다.

하이닉스 매각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양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하이닉스,나아가 반도체 업종에 대한 그릇된 통념과 몰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임직원들은 자신들을 향한 세칭 '시장의 우려'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쟁쟁한 업체들과 사선을 넘나드는 백병전을 펼치며 살아남았는데,총 한 자루 잡아보지 않은 후방의 헌병들이 엉뚱한 걱정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4조92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들였다. 이 기간 동안 현금유입(에비타)은 16조2700억원에 달했다. 이를 발판으로 연평균 3조2500억원에 달했던 투자비를 자체 조달했다. 이 회사는 창사 이래 단 한번도 마이너스 에비타를 기록한 적이 없다. 자금이 쪼들리던 워크아웃 시절에도 채권단에 시설자금을 빌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조석래 효성 회장은 혜안이 있는 기업인이다. 투자자금을 효성그룹이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SK텔레콤과 STX도 지금쯤 이 점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기에 따라 반도체 가격의 부침이 심한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반도체시장은 어떤 업종보다도 진입장벽이 높다. 세계 제조업의 맹주인 중국 조차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 게다가 하이닉스는 승자대열에 합류해 있어 외부 여건 변화에 쉽게 휘둘릴 가능성도 낮다.

SK텔레콤 주가는 수익성 퇴조로 지난 몇 년간 끝없이 추락해 왔다. 내수 기반의 수익성도 점차 퇴조하고 있다. 여기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무료 통신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안정적인 배당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하이닉스 인수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으면 어찌될 것인가. 나중에 "성장동력이 없다"는 또 다른 이유로 주식을 던질 것이다.

STX는 재무적 불확실성 외에 기존 주력사업과의 시너지 부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강덕수 회장이 그동안 성공시켰던 인수 · 합병(M&A) 중에 '리스크 제로'는 하나도 없었다. 시너지라는 것도 원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맥주회사가 기계 · 중공업 회사를 인수한 것이 오늘날 두산그룹의 모습이다. 설탕사업과 무역으로 돈을 벌어 세운 회사가 삼성전자다. 미국 보잉사의 모태는 노키아와 마찬가지로 목재회사였다. 1,2년 내에 결판을 내겠다는 조급함만 없다면 시너지는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

리스크를 강조하는 것만이 냉정한 평가라고 착각한다면 곤란하다. 지난 10년간 증권가에 언급된 리스크들을 쭉 나열해보면 진작 형체도 없이 사라졌어야 할 기업이 하이닉스다. 그렇게 손쉽게 기업을 분석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 또 다시 '시장의 저주'를 들먹이는 것은 가당찮다. 그럼 가만 있으면 시장이 알아서 살려주고 성장시켜준다는 말인가.

조일훈 IT모바일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