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저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여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반영되죠.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언제나 저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줍니다. "

서울 광화문 정갤러리에서 19일부터 개인전을 여는 재미화가 이승 뉴욕 롱아일랜대 미대 대학원장(52 · 사진)은 "한국적 정체성을 살리면서 서구적인 조형 언어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4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 화가. 뉴욕 메릴랜드대 미대를 졸업하고 브루클린 프랫 인스티튜트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롱아일랜드대 미대 대학원장으로 강의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2004년 서울 인사동 우림화랑에서 자신의 과거 작품을 모두 가위로 잘게 유리병 속에 밀봉하는 충격적인 작품으로 국내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전시회를 뉴욕에서 개최했다.

미국 화단에서 맛깔나는 화풍으로 호평을 받은 그는 미국과 한국의 경계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작품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제가 태어난 경기도 가평에 가봤더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제 삶과 관련 있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죠."

그는 택시기사를 비롯해 바텐더,목수,피자가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험난한 이민생활을 겪은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75년 어머니와 형 4명과 함께 20달러를 들고 미국에 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1989년에는 뉴욕에서 택시기사를 하다가 강도를 당하기도 했죠.작업실에 몇 차례의 화재가 나 절망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

그는 이민 생활의 풍부한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거리에 버려진 부속품들을 활용해 작업하는 식이었다.

"제 작업은 오브제의 경계를 깬 마르셀 뒤샹처럼 쓸모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창조성을 갖게 합니다. 그러한 반복은 또 다른 수련의 과정이기도 하지요. "

동양적 윤회 사상은 뉴욕에서 그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심적 사상이다. "저에게 리사이클링의 개념은 불교의 윤회 개념과도 통합니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해왔거든요. "

그의 작품에는 유독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생성 발전 소멸의 순환 알레고리로 이민 생활 동안 겪은 자신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비바람과 폭풍에 맞서며 살아가는 나무가 제 삶과 닮았다고 생각해 소재로 활용했죠."이번 전시는 내달 2일까지 이어지며 21일 오후 6시에는 미국 재즈 가수 게일 스톰의 공연도 열린다. 또 서양화가 이금희,임재광 씨 등 13명이 참여하는 롱아일랜드대 동문전은 22일부터 정갤러리 강남점에서 열린다. (02)733-19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