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정부종합청사가 과천으로 이전한 뒤 28년간 지켜져온 금기가 있다. 기획재정부를 제외한 건물엔 정책 모토가 담긴 현판을 달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정부 건물 앞엔 '서민은 따뜻하게,중산층은 두텁게'라는 현 정부의 정책 의지를 담은 표어가 붙어 있다. 재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처들에 현판을 달지 못하게 한 것은 정책 기조에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지식경제부가 이 금기를 깼다. 지경부는 지난 9일 1층 입구 앞에 재정부 것과 비슷한 크기의 현판을 달고 '산업강국,무역대국 완성'이라는 문구(사진)를 붙였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취임 직후 정책 모토를 담은 현판을 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미관을 해친다' '전례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청사관리소가 반대하자 "우선 현판부터 달고 나서 얘기하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경부도 중요한 현안들을 다루는 '정책 부서'인데도 재정부만큼 역할이 부각되지 못해 갖게 된 피해의식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지경부는 '산업과 무역을 키우고 에너지자원을 발굴하는 정책도 거시경제정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현판이 걸릴 때까지 전체 직원 조회도 미루는 배수진을 쳤다. 청사관리소 측은 지경부의 고집에 못이겨 우선 3개월만 달도록 허용했고,추후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현판이 걸린 직후인 지난 15일 최 장관은 취임 이후 첫 조회를 가졌다. 그는 "전 직원들이 '산업강국,무역대국 완성'이라는 슬로건을 보면서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