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장마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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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났다. 정말 지긋지긋한 장마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온 장마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장마기간 내내 어서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어린애 같이 마음 속으로 빌었다. 발로 뛰는 영업을 해야 하는 회사의 특성상 내 마음은 어느 정도 간절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비에 씻긴 하늘은 청명하다. 그래서 뜨겁다. 아뿔싸!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모두가 이런 추위는 난생 처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통계상으로만 본다면 올 1월 기온은 작년 1월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따뜻한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현재의 추위와 더위를 항상 최악으로 체감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경험을 최고,최상,최악으로 느낄 때 과거의 기억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유독 이러한 경향이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은 유별난 유전인자(DNA)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망각DNA'다. 우리는 '난생 처음이다'고 느꼈던 추위와 더위마저도 며칠 안에 싸악 잊어버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
이러한 기질은 분명 사계절이 순환하는 환경에서 형성됐을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인내와 끈기,도전정신,뜨거운 열정까지도 이러한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난 계절의 추위와 더위를 온 몸으로 기억하고,그 공포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면 우리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기쁨도,극한의 오지에 쌓아올린 경제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망각DNA는 반성과 대비를 결여시킨다. 한파에 수도가 동파하고 집중호우에 마당이 잠겨도 1년을 허송하고 똑같은 재해를 당한다.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당장의 위험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급기야 또 맨몸으로 자연재해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지금 비가 오지 않는다고 구멍난 지붕을 그대로 두고 새옷을 사 입는 격이다. 망각DNA는 우리에게서 고통의 기억을 지워준 대신 매년 수많은 인명과 재산,천문학적인 복구비용을 앗아가고 있다. 심각성은 이러한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데 있다.
잊을 건 잊되 잊지 말아야 할 건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릴 적 넘어져서 무릎이 긁힌 정도의 상처는 기억해둬야 쓸 데도 없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재해는 뇌세포를 몽땅 동원해서라도 기억하고,되새기고,대비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고 싶은 물건,하고 싶은 놀이가 있어도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앞날에 대한 대비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다시 무더위가 시작됐다. 장마는 물러갔어도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휴가로 들뜨기보다는 지난 비로 새는 지붕은 없는지,작년 여름 쓰고 넣어둔 튜브는 이상없는지 점검하고 대비하자.아이들에겐 게임기보다 튼튼한 구명조끼를 사주도록 하자.'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라(居安思危)'는 고사를 되새기는 게 여름장마가 남긴 교훈이 아닐까.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사장 mdha426@miraeasset.com >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모두가 이런 추위는 난생 처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통계상으로만 본다면 올 1월 기온은 작년 1월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따뜻한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현재의 추위와 더위를 항상 최악으로 체감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경험을 최고,최상,최악으로 느낄 때 과거의 기억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유독 이러한 경향이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은 유별난 유전인자(DNA)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망각DNA'다. 우리는 '난생 처음이다'고 느꼈던 추위와 더위마저도 며칠 안에 싸악 잊어버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
이러한 기질은 분명 사계절이 순환하는 환경에서 형성됐을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인내와 끈기,도전정신,뜨거운 열정까지도 이러한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난 계절의 추위와 더위를 온 몸으로 기억하고,그 공포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면 우리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기쁨도,극한의 오지에 쌓아올린 경제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망각DNA는 반성과 대비를 결여시킨다. 한파에 수도가 동파하고 집중호우에 마당이 잠겨도 1년을 허송하고 똑같은 재해를 당한다.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당장의 위험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급기야 또 맨몸으로 자연재해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지금 비가 오지 않는다고 구멍난 지붕을 그대로 두고 새옷을 사 입는 격이다. 망각DNA는 우리에게서 고통의 기억을 지워준 대신 매년 수많은 인명과 재산,천문학적인 복구비용을 앗아가고 있다. 심각성은 이러한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데 있다.
잊을 건 잊되 잊지 말아야 할 건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릴 적 넘어져서 무릎이 긁힌 정도의 상처는 기억해둬야 쓸 데도 없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재해는 뇌세포를 몽땅 동원해서라도 기억하고,되새기고,대비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고 싶은 물건,하고 싶은 놀이가 있어도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앞날에 대한 대비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다시 무더위가 시작됐다. 장마는 물러갔어도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휴가로 들뜨기보다는 지난 비로 새는 지붕은 없는지,작년 여름 쓰고 넣어둔 튜브는 이상없는지 점검하고 대비하자.아이들에겐 게임기보다 튼튼한 구명조끼를 사주도록 하자.'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라(居安思危)'는 고사를 되새기는 게 여름장마가 남긴 교훈이 아닐까.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사장 mdha426@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