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가 성숙해질수록 사람들 간의 관계가 투명해지기 때문에 눈뜨고 사기당할 가능성이 줄어들기는 합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사기꾼을 가려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기꾼을 가려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속기 쉬운 것이 다단계 판매입니다.



#다단계 판매의 교묘한 함정

잘 아시겠지만,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1000만원을 투자해라.그러면 석 달 뒤에 두 배로 불려주겠다. 정말 환상적인 수익률이죠.은행에 넣고 1년 있어봤자 이자가 겨우 5% 수준인 데 석 달 만에 100%의 이자를 주겠다니 누가 솔깃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석 달 안에 다른 투자자를 세 명 또는 네 명 데려오라는 식입니다.

실제로 갑이라는 사람이 을,병,정 세 명을 데려 왔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다단계 회사의 입장에서는 3000만원이 생기는 셈입니다. 그 중에서 1000만원을 갑에게 돌려줍니다. 남는 돈은 그 회사가 챙기는 거죠.회원들이 계속해서 다른 회원을 데려오는 동안은 문제없이 굴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회원이 불어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거기에서 다단계는 끝장이 나고 맙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빈털터리가 되는 거죠.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 사건입니다. 제이유는 주 회장이 기존의 다단계 판매와 차별적인 마케팅을 표방하며 1999년 창업한 회사입니다. 중 · 장년층과 노인,퇴직자를 대상으로 투자를 권유하며 주로 화장품과 건강식품 등을 판매했던 제이유는 1년 만에 매출 450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한때는 연간 매출이 2조원에까지도 이르렀죠.

제이유는 사업 초기 기존 다단계 판매업체가 하위 단계의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수당을 보장하는 방식과 달리,회원 스스로가 투자 또는 소비를 하면 회사 전체의 매출이 늘고 이에 대한 수당을 준다는 소위 '소비생활마케팅','공유마케팅'을 표방했습니다. 실제 일정한 투자금액의 수당을 일수 방식으로 매일 통장에 입금해주면서 투자분위기를 키워나갔습니다.

제이유는 2005년 판매원의 평균 투자금이 2000만원 이상에 달할 정도가 됐지만 거기가 한계였습니다. 매출이 줄고 수당도 지급할 수 없게 됐습니다. 투자금액이 대부분 피해금액이 된 셈이죠.피해자 15만명,피해액 1조원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해외의 금융 피라미드 사건

제이유는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고수익을 돌려주는 금융피라미드,정수기나 옥돌침대 같은 것들을 비싼 값에 팔고 다른 회원을 끌어들이라고 강요하는 등의 판매업체가 수없이 많습니다. 다단계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1920년대 미국에서 폰지라는 사람이 저지른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 사건이었죠.폰지는 다른 투자자를 끌어오면 투자 자금을 석 달 만에 두 배로 불려준다며 4만여명에게 1500만달러를 받아 삼켜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단계 피라미드 방식의 사기 사건을 '폰지게임'이라고도 부릅니다.

알바니아에서도 대형 사고가 터졌습니다. 1997년 1월 다단계식 금융투자 회사들이 잇달아 파산했습니다. 이들 회사의 파산으로 알바니아 국민들은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확천금의 꿈에 젖어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죠.이 사건은 집권세력이 개입한 일종의 금융사기극의 결과이며,정치권이 기금을 유용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당시 베리샤 대통령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공군기까지 동원해 가며 유혈 진압했고,시민들은 대공포와 전차를 탈취해 군경에 맞섰습니다. 궁지에 몰린 베리샤는 시위 세력들을 반(反)민주적 스탈린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하는 한편 지역감정에 의지해 자신의 출신지역인 북부지방 주민들에게 무기를 나눠주고는 정권 옹호에 나설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서 1800여명이 희생되고,대통령도 물러났습니다. 다단계 판매가 빚어낸 대형 참극이었습니다.



#다단계는 모두 나쁜 것인가

그렇다고 다단계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경영학에도 등장하는 마케팅 수단이 네트워크 마케팅입니다. 하나의 고객에게 써보게 한 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고객에게 소개하도록 만드는 방식이죠.고객을 판매원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암웨이라는 회사의 영업방침이 이것입니다.

예전에는 타파라고 하는 플라스틱용기 회사도 이런 방식으로 영업을 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명을 포섭한 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친구나 동네 다른 아주머니들을 모아 놓고 그릇 파티를 해서 파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그 파티를 주관한 사람에게는 공짜로 그릇을 주는 등의 보상이 이뤄집니다. 이것도 모양으로만 보면 다단계 판매입니다. 한 사람이 세 사람 또는 네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니까 이론적으로 따지면 순식간에 모든 소비자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들이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다면 나쁘거나 해로운 다단계가 아닙니다. 해로운 다단계의 경우는 형편없는 물건을 터무니없는 값에 인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니까 다단계 판매도 좋은 것이 있고 해로운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다단계와 해로운 다단계를 구분할 방법이 있을까요. 터무니없이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고 선전하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수익이 높은 사업이라면 자기들만 하지,왜 나눠주려고 하겠습니까. 동네방네 떠들면서 높은 수익을 돌려주겠다고 선전하는 것은 뭔가 수상한 것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비싼 가입비를 받은 뒤 다른 회원을 데려올 때마다 얼마씩 돌려주는 방식도 의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 별로 가치도 없는 물건을 아주 비싼 값에 사야 하는 경우도 의심할 만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새겨둬야 할 것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다보면 사기당하기 십상입니다. 그게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철칙 아닐까요.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미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숭실대 법학 박사 △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주임연구원,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 △저서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땅은 사유재산이다' 등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chungho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