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약(百年佳約)'이란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할 판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나라에서 결혼한 부부는 총 32만여쌍이며,이혼한 부부는 약 11만여쌍이다. 사랑과 헌신을 약속한 부부들 사이에서도 행복한 결혼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로맨스는 3년이고,결혼생활은 30년이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과 헌신 위에 무언가 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혼한 부부들 간에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이슈를 살펴보자.종종 아내들은 중요한 기념일을 잊는 남편이 얄밉다고 하고,남편들은 아이들에게 시달렸다면서 등 돌리고 잠드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이슈에 대한 해답만 찾아도 부부생활은 훨씬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 평가절하' 경향을 이용한 일정잡기

일상에 쫓기며 사는 남편들은 결혼기념일,아내의 생일 등을 가볍게 생각했다가 당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뭔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미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마련이다. 사실 사람들은 종종 미래의 혜택이나 노력을 실제보다 터무니없이 할인해 계산한다. 예를 들어,사람들에게 1년 뒤 100만원과 1년1개월 뒤 110만원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110만원을 선택한다. 그런데 1년을 기다린 뒤 다시 기회를 주면 그 시점에서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100만원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한 달만 더 기다리면 1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한 달 뒤 110만원보다 현실의 100만원이 더 큰 혜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명한 부부는 이런 성향을 이용,미래의 수고와 노력을 확정적으로 투자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즉 미래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일찌감치 하겠다고 약속해 나중에라도 핑계를 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출로 집을 사고 10여 년에 걸쳐 대출금을 상환하는 것이 전형적인 선(先)투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혼기념일이나 아내의 생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을 미리 구하고 여행상품도 구매해 두자.당장 업무를 빼고 여행을 하라면 힘들지만,두 달 뒤라면 쉽게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당일이 돼서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으니 미리 잔금까지 지불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기념일을 잊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격정책을 통한 만족감 증대

남편에게 등 돌리고 잠드는 아내들도 경제학적 원리를 남편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데이트를 하는 시절에는 남자친구에게 비싸게 구는,이른바 고가 정책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사람들은 공들여 구한 대상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미혼 시절에만 효과가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결혼생활의 패키지였던 잠자리가 점점 드물어지면 남편들은 충성심 대신 배신감을 느낀다. 중년 남편들 중에는 잠자리 비용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즉 30분 더 자겠다거나,드라마를 마저 보겠다면서 잠자리 요청을 거절하는 아내로부터 일종의 감정적 진입장벽을 느끼는 남편이 많다는 말이다.

이때 아내들은 차분하게 손익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 30분 더 자는 일,드라마를 마저 보는 일이 잠자리의 기쁨,남편이 느끼는 행복과 자신감,집안의 평화보다 더 귀한가를 따져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상품은 비용을 낮추면 구매가 늘어난다. 잠자리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잠자리의 진입장벽을 낮추면 남편은 더 자주 잠자리를 시도한다. 많은 결혼 카운셀러들이 이야기하듯 잠자리가 늘어나면 대부분의 부부들은 더 큰 행복감과 연대의식을 느낀다. 그렇다면 남는 거래가 아니겠는가.

성스러워야할 결혼생활에 경제학 원리를 적용한다는 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도 여느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에너지라는 제한적 자원을 가진 두 사람 간의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부부는 굳이 따로 배우지 않고서도 이미 성공적으로 경제학 원리를 결혼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일부 신혼 부부들은 밥짓고,빨래하고,청소하는 가사일을 요일별로 나눠 분배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하며 상대방은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경험이 많은 원숙한 부부들은 이런 때에 경제학의 비교우위 개념을 적용한다. 즉 남편은 공구 조작과 기계 수리에 집중하고 아내는 요리에 집중하며,가사일을 놓고 싸우기를 멈춘다. 분명 경제학은 결혼생활에도 쓸모 있는 학문이다.

김용성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