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이경하 JW중외제약 부회장(48)에게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세계 1위 암센터인 미국 MD앤더슨암병원이 다음달 1일 이 회사가 개발한 표적항암제 'CWP231A(가제)'의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낭보였다. 수화기를 집어든 이 부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숱한 좌절과 도전으로 점철돼온 지난 12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제 글로벌 제약사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겠다'는 말을 되뇌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부회장에게 CWP231A의 임상 돌입은 단순히 미국 환자들에게 약물 투여 시험을 시작했다는 의미 이상이다. 국내 제약사가 혁신신약(First-in-class · 신개념 신약)으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승인을 받은 첫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114년의 한국 제약사(史)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기적의 약물로 불리는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같은 글로벌 신약을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의 성과도 엄청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표적항암제의 세계 시장 규모가 30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JW중외제약이 잡은 셈이다. 이 부회장은 낭보를 받자마자 곧바로 1박3일간의 미국행을 결정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이 부회장은 기자와 만나 "현지 관계자들의 반응이 좋았다"며 "목표대로 2016년 신약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약의 출시 첫해 매출 목표는 3000억원이며,연간 1조원대 블록버스터로 키울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신개념 표적항암제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해방둥이 기업으로 출발한 JW중외제약은 제약산업의 '개척자'로 불려왔다. 1959년 국내 최초로 수액제(링거) 개발에 성공했고 1968년엔 최초의 합성항생제인 리지노마이신을,2001년에는 국내 첫 3상 신약 항균제 큐록신정을 개발했다. 이어 세계 최초로 차세대 항생제 이미페넴의 퍼스트제네릭(복제약) 합성에 성공,국내는 물론 다국적 제약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 부회장은 "CWP231A는 'Wnt'라는 암세포 신호체계를 방해해 암을 치료하는,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약물"이라며 "임상에 성공하면 한국이 세계 8번째로 '혁신신약' 개발국이 된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은 2016년 미 FDA 승인을 거쳐 미국 시장에 발매할 계획이다. 다국적 제약사와의 제휴 및 기술이전 등으로 연간 1조원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이 신약개발에 나선 까닭은 쪼그라들고 있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병원 입원환자들에게 잘 알려진 제약사 중 하나다. 5% 포도당 · 생리식염액 등 입원환자들이 맞는 링거주사인 기초수액제제 시장의 55%를 점유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2009년 중국 항주민생그룹에 1억달러 수출계약을 맺었고 지난해는 국내 제약사로는 처음으로 유럽시장에 진출,독일 베를린케미사에 1800만유로 규모의 영양수액제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JW중외제약은 2000년대 초반까지 동아제약 유한양행 등과 제약업계 부동의 '빅3'를 구축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업계 순위 6위(매출기준)로 밀리며 명성과 자존심을 구겼다. 정부의 약가 인하,저가구매 인센티브 등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업계 전체가 불황의 늪에 빠진 데다 원외처방조제약 부문에서 성장이 정체된 결과다. 국내 매출은 2009년 4551억원에서 지난해 4432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12년 뚝심'으로 美 FDA 임상 승인

JW중외제약은 위기상황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 공을 들였고,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혀 나갔다. 2000년 신약 개발에 착수한 이후 한번도 연구 · 개발(R&D) 비용을 줄인 적이 없다. 업계의 한 중진원로는 "제네릭(복제약)이 판치는 국내 제약환경에서 5년 이상을 특정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며 "'오너'의 집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처음에는 외로웠지요. 하지만 고단한 연구과정을 거치면서 대표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JW중외맨 전체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나가야 세계시장에 통하는 신약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JW중외제약이 개발한 신약은 암의 재발원인인 암 줄기세포를 사멸시켜 암을 근원적으로 치료해주는 표적항암제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캐나다에서 진행한 전(前)임상시험 결과 'CWP231A'는 FDA 임상 승인에 필요한 유전독성시험,안전성약리시험을 모두 충족했다. 특히 장기투여 시에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 급성골수성백혈병,림포마,다발성골수종 등 혈액암은 물론 폐암 등 고형암에 대한 동물시험에서도 현재 주치료제로 사용되는 약물보다 2배 이상 우수한 항암효능을 보였다.

◆2015년 매출목표 1조5000억원

JW중외제약은 신약 승인 이후에도 혈액암은 물론 고형암에 대한 순차적인 임상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적응증을 확대해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치료제로 육성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CWP231A 외에도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개발했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발기부전치료제 '제피드'는 올해만 1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항체의약품인 류머티즘 관절염치료제 '악템라',2014년에는 DPP-4 당뇨치료제,2016년 항궤양제제 S-테나토프라졸 등을 내놓을 예정이다.

JW중외제약은 지난 5월 사명을 '중외'에서 'JW중외'로 바꿨다. 'JW'는 'Jump to the World'의 약자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2015년까지 그룹 매출을 현재의 2배 수준인 1조5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 2015'도 선포했다. 현재 국내 제약사 중 연간 매출액 1조원을 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JW중외제약은 단순한 수액 회사를 뛰어넘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세계 최초의 Wnt표적항암제 출시에 앞서 다빈도질환에 대한 신제품,주력 품목인 차세대항생제 이미페넴과 영양수액 등의 미국 · 유럽시장 수출이 본격화되면 매년 1억달러 이상의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