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채무불이행이다. 채무불이행으로 손해를 본 많은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의 위기에 내몰리면 금융위기다. 채권 값이 폭락하고 금리는 폭등하는데 안전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현금을 움켜쥐고 있다. 자금유통이 막히면 기업들이 줄줄이 흑자 도산하는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17개국으로 출발한 유로존(Eurozone)은 유로(Euro)를 단일 통화로 사용한다.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의 권한은 유럽중앙은행 (European Central Bank) 이 행사하고 국별 재정정책만 해당국 정부가 관장한다. 유로존 가입 이후부터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한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PIIGS) 5개국 정부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재정수지 악화로 채무불이행 사태에 몰렸다.

유로존에서 PIIGS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으로는 30%고 재정수지 적자 규모로는 50%에 이르는 만큼 이들의 위기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다.

배경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현재 PIIGS 5개국의 공통적인 곤경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적자다. 같은 상황에 처한 비(非)유로국의 사정에 비추어 유로존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비유로국은 환율인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개선할 수 있으나 PIIGS 5개국은 그럴 수 없다. 비유로국이 더 유리한 것 같지만 인위적 환율조정의 부작용과 단일통화의 이점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대외지불능력 측면에서는 유로국이 더 유리하다. 유로화 결제의 역내 거래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역외 거래에서도 유로존 전체의 외환보유액만 충분하면 유로화의 환전은 항상 보장된다. 반면에 비유로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 바로 외환보유액을 고갈시켜서 대외지불능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러나 재정적자 문제에서는 유로국이 더 불리하다. 국채상환을 위한 국채를 신규로 발행해야 할 때 비유로국의 중앙은행은 통화공급을 늘려서라도 재원을 만들어 이것을 매입해줄 수 있다. 그러나 통화증발의 재량권이 없는 유로국의 국별 중앙은행은 국채를 정부가 원하는 만큼 인수할 능력이 없다.

중앙은행이 신규 국채를 인수하는 동안은 채무불이행 사태를 뒤로 미룰 수 있으므로 비유로국은 그 기간을 대책 마련에 쓸 수 있다. 그러나 통화증발권이 없는 유로국은 이렇게 못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곧바로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유로국은 구조적으로 국채 누적을 감내할 능력이 취약하다. 단일통화의 이익을 누리려면 재정적자 규모를 엄격히 통제하는 등 국별 재정자율성을 제한해야 한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