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지만 법조계의 휴가 인심은 박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고된 검찰은 지난해보다 휴가 가기가 더 어렵다는 분위기다. 7월 말부터 2주간 휴정하는 법원도 "휴정 기간은 쌓인 사건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기회"라는 반응을 보이는 판사들이 다수였다. '휴식 없이 일하는 게 미덕'인 시대는 갔지만 선진 외국처럼 '재충전을 위한 휴식'을 인정하기엔 시기상조다.

변호사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휴가 가기 전에 행선지와 호텔 팩스번호까지 보고해야 했다"면서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틈틈이 메일 확인을 하고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 첨단문명의 이기에 고마울 따름"이라며 씁쓸해했다.

◆부장검사"가정에 충실!" 휴가는 이틀

판사와 검사들의 휴가 기간은 소속과 직위에 좌우된다. 소속이 '장'과 가까울수록,직위가 높아질수록 휴가는 멀어진다. 검사의 휴가는 봄과 가을에 2~3일 단기,여름에 장기라는 게 나름의 원칙이다. 하지만 검사들 상당수는 성수기인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여름철에 대폭 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부장검사급 이상은 인사대상자라 휴가를 가기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검의 모 부장검사는 "본인이 검사지 가족들이 검사가 아니고,특히 아이들은 그저 검사의 아들딸로 태어난 것"이라며 가정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평검사들에게 여름휴가를 이틀 이상 안 주고 있다.

업무도 발목을 잡는다. 몇 년 동안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는 법무부의 한 검사는 "기획부서에 있을 때는 압박이 심해서,수사 일선에 있을 때는 성과가 덜 나서 휴가를 못 갔다"고 털어놓았다. 휴가로 자리를 비웠을 때 '깡치사건'(어렵고 복잡하고 해결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이 자신에게 배당될까봐 신경쓰인다는 검사들도 있었다.

◆"배석판사 휴정 때 2주 쉰다"는 괴담

7월 말에서 8월 초 휴정 기간이 2주일인 법원 판사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2주일을 꽉 채워 장기 여행을 가는 판사들이 있다더라'는 소문이 법조계에 돌지만 1주일 전부를 휴가내는 판사들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금요일 하루 정도 쉴까 생각 중"이라며 "수도권 근무하는 판사들 중 1주일을 채우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사건을 누가 해결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휴가가 길수록 누적 업무량은 살인적으로 증가한다"고 고충을 전했다. 다른 배석판사는 "1주일을 넘겨 휴가를 간다면 부장판사의 싸늘한 눈길을 피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고등법원 배석판사로 있을 때 0시부터 24시까지 온전하게 쉬어본 날이 1년에 이틀 정도"라고 전했다.

◆8박9일 해외여행 다녀온 간 큰 검사

간혹 강(强)심장 검사도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 때의 일이다. "1주일씩 휴가 가라"는 김 총장의 배려에 용기를 낸 강모 공보관이 휴일을 앞뒤로 끼워 8박9일짜리 터키 여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정 · 관 · 재계 인사 1800여명을 도청한 X파일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떠나는 날 아침에 출국인사를 갔더니 김 총장이 "안기부 직원 압수수색에서 테이프가 270개 나왔다. 걱정말고 잘 다녀와"라고 하더라는 것.강 공보관은 터키에 있는 내내 사태의 진전 상황을 체크하느라 바늘방석이었다고 한다. 강 공보관은 김 총장에 대해 "참 통이 컸다"고 기억했다.

이고운/임도원/심성미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