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곳엔 어린이집이 없어요. " "영화 한 편 보려면 차를 타고 30분은 나가야 돼요. "

산간 오지나 도서 벽지 얘기가 아니다. 입주 기업 1만663개가 모여 있는 국내 최대 국가산업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에서 쏟아져 나온 한탄이다. 구로 · 가산동에 걸쳐 있는 이곳 G밸리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3만2000여명(4월 기준)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아이를 맡길 만한 어린이집은 단 두 곳뿐이다. 문화시설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그 흔한 영화관이나 전시회장도 없다. 지식경제부와 산업단지공단이 최근 'QWL 밸리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산업단지 내 복지 · 문화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한 보육 시설을 늘리고 콘서트,연극 공연 등 문화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 산업단지를 '일-생활-여가'를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올초부터 직장 보육시설이나 국 · 공립 어린이집 설립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직장 내 어린이집은 별도의 대피시설을 마련해야 하는 규정 탓에 기업들이 설치를 꺼려왔고,산단공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 · 공립 시설은 임대료가 가장 비싼 1층에만 세울 수 있도록 한 규정이 걸림돌이었다.

규제 완화에 앞서 보육시설을 신설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산단공은 22일 G밸리 2단지 내 어린이집(전용면적 415㎡)을 개원하고,남동 · 시화,광주산업단지에도 30억원을 들여 보육시설을 추가로 짓고 있다.

G밸리를 중심으로 △무료 문화 · 예술 강좌 △무료 문화 행사 △동아리 지원 사업 △'산업단지 가족 문화 · 예술 한마당 행사' 등 근로자들의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산단공이 지난해부터 G밸리를 비롯해 전국 7개 국가산업단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센터에선 무료 문화 · 예술강좌가 열린다. G밸리에선 입주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합창단 'G하모니'에서 노래를 배울 수 있고 남동 · 반월 · 시화산업단지에선 팝아트,네일 아트 관련 강좌가 개설돼 있다. 광주산단에선 천연 화장품 제조법과 디지털카메라 활용법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창원산업단지에선 합창과 요리 강연이 매주 열린다.

'산업단지의 날'이 제정된 8개 국가산업단지에서는 뮤지컬,연극,오케스트라,아카펠라 등 민간 예술단체들의 공연이 열린다. 산단공과 협력을 맺은 중소기업중앙회가 5~12월에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찾아가는 문화 공연'은 지금까지 20개 기업,5000여명이 관람했다. 산단공은 앞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협력을 통해 △맞춤형 문화 교육 사업 △유명 예술가가 강의하는 문화 · 예술 특강 △점심 시간에 입주 기업을 방문,공연하는 '런치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을 신설할 계획이다. 이범호 산단공 기업지원팀 과장은 "산업단지가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주 근로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멀리 갈 필요 없이 근로자들이 산업단지 내에서 여가 · 오락을 즐길 수 있도록 문화시설과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