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변호사ㆍ변리사가 서로 미워할 때
왜 글로벌 서비스 기업은 안 나오는가? 그것도 1등 인재들만 몰린다는 법률 의료 등에서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울타리 치기에만 열중하면 결국 국제적으로 열등해지고 마는 것은 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밖의 힘을 빌려서라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부 동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박 장관은 법률 등의 개방을 이룬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한 · 유럽연합(EU) FTA에 잔뜩 기대를 거는 눈치다. 과연 법률시장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낙관하기 어렵다. 변호사협회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하지만 정작 국내 변호사의 경쟁력이나 해외진출보다 어떻게 하면 외국법 자문사들에 태클을 걸어 시장을 고수할지에 더 골몰하는 분위기다. 망하는 바보들이 택하는 전형적 수순이다. 손에 쥔 것 때문에 더 큰 떡을 놓치고 마는 것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다.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갈등하고 있는 특허소송 분야가 바로 그렇다.

미래학자들은 기업 진화의 마지막은 특허 등 지식재산(IP) 회사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기업들은 그쪽으로 가고 있고, 그래서 특허괴물을 괴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갈수록 특허소송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 변리사들은 변리사법 제8조에 규정된 대로 소송 대리인 자격을 달라고 요구한다. 특허의 유 · 무효나 권리범위를 판단하는 심결취소소송뿐 아니라 특허침해소송 대리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특허침해소송은 말도 꺼내지 말라고 말한다. 변리사들은 특허기술에 전문성도 없는 변호사들만 특허침해소송을 맡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하고,변호사들은 소송은 소송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되받아친다. 의뢰인이 원하면 변리사를 공동 대리인에 참여시키자는 중재안도 나왔지만 7년째 국회통과가 안 되고 있다. 법조인들이 장악한 법사위에 가로막힌 탓이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이 문제는 단순한 직역 싸움의 양상을 넘어 심각하다. 법률시장이 개방됐지만 선방하고 있다는 일본은 2003년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특허침해소송을 맡을 수 있게 했다. 중국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이다. 변리사 단독으로도 특허침해소송이 가능하다. 영국도 변호사와 변리사 공동이고,미국은 과학기술을 전공하고 특허대리인 자격과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갖춘 특허변호사가 주로 소송을 맡는다. 이들 국가가 개념이 없어 그러는 게 아니다. 소비자 요구와 선택을 따른 것이다.

소송을 의뢰할 국내 기업의 97%가 변호사,변리사 공동 대리를 찬성한다. 당장 영국의 로펌 진입에 대응해야 하고,곧 미국의 특허변호사와도 경쟁 해야 할 사람들이 이런 여론을 외면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배가 부르거나,아니면 시장을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내가 못 먹을 바에는 너도 먹지 말라는 그런 심보라면 결국 특허침해소송의 밥상은 외국인의 몫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들은 변호사가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갖는 대한민국을 더 없이 놀기 좋은 시장으로 알고 있다. 로스쿨 변호사들이 배출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지만 그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것이고,그때는 이미 국내 시장이 초토화된 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