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그만큼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당초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가구 구성이 변하면서 제도 도입 취지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커졌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2인 가구가 전체의 48.2%로 절반에 육박하고,5인 이상 가구는 8.1%에 불과하다. 1980년만 해도 5인 이상 가구가 절반(49.9%)이었다.

1~2인 가구는 가구원이 적다 보니 자연히 전기 사용량도 적다. 소득이 많은 싱글족이나 아기를 낳지 않는 부부 등이 싼 값에 전기를 쓰는 셈이다. 반면 가구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저소득층은 전기 사용량이 많기 때문에 소득 대비 비싼 전기료를 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월 평균 전기 사용량은 일반 가구의 85%(월 203㎾h)에 육박해 전기료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재 6단계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3~4단계로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1단계는 가구당 최소 필요 전력량(월 150~220㎾h)으로 정해 원가(생산비+투자보수비)의 80% 정도에 공급하고,그보다 전기를 더 쓰는 2,3단계는 원가 이상으로 전기요금을 받자는 것이다.

주택용보다 싼 값에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요금도 문제로 꼽힌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요금은 원가의 90% 선이었다. 이 중 주택용은 원가의 95%,산업용은 89%였다. 전체 전력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싼 셈이다. 값 싼 전기요금은 전력난을 부추기는 데다 한전의 투자 여력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물가에 미치는 부담 때문에 인상폭은 최소화할 방침이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4%대 인상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택용은 2% 정도만 올리고 산업용을 6%가량 인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저소득층의 부담 경감과 함께 저소득층의 전력 과소비를 어떻게 막을지도 고민거리다. 20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거론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에너지 바우처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관계부처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이중지원'이라며 반대한 데다 기획재정부도 예산 문제로 난색을 표시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 바우처제는 오는 26일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을 전망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