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1998년 미국 LPGA 맥도날드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은 '세리 키즈'.이들에게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여자골프 무대를 점령해가고 있는 세리 키즈들은 승부에 집착하기보다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다. 올해 우승자들을 통해 여자 골프의 트렌드 변화를 짚어본다.

◆천재 · 노력형 넘어 즐기는 골프

무엇보다 여유 있는 집안 환경에서 골프를 시작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우승자들만 봐도 '헝그리 골퍼'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골프에 '올인'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박세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신지애 또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그러나 국내 첫경기 롯데마트오픈에서 우승한 상금랭킹 1위 심현화는 아버지가 기아자동차에 전선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

올해 신인으로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상금랭킹 2위 정연주도 아버지가 식품사업을 하며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집안에서 컸다.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던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간 골프연습장에서 우연히 해 본 스윙 덕분에 골프를 시작했다.

상금랭킹 6위 양수진도 어머니를 따라 간 골프연습장에서 출발했다. 5세 때부터미술을 공부했을 정도로 여유 있는 환경에서 골프를 시작했다.

◆준비된 골프 선수

이들은 선수 이후의 삶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다. 올해 US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은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바이올린을 배웠고 어려서부터 영어도 준비했다. 대원외고를 졸업한 뒤 체육특기생으로 연세대에 다니면서 학업에도 열중하고 있다. 상금랭킹 3위 이승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뒤 중학교 때까지 학업과 골프를 병행한 학구파다. 한영외고를 졸업하고 중앙대에 다니고 있는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면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이처럼 준비된 골퍼들은 LPGA에서 우승한 뒤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에 응하며 그동안 '영어 못하는 한국 선수들 때문에 투어가 망한다'는 비난을 훌훌 털어버렸다. US오픈 우승자인 유소연이 세련된 영어로 우승 소감을 얘기하자 준우승자인 서희경이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한 장면도 달라진 세리 키즈의 단면이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