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일본 여성들이 '니고리 사케(일본 탁주)'는 몰라도 '니코리 맛코리'는 잘 마십니다. "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무역협회 51층 교육관 대회의실.무협 주최로 배타적인 유통구조 등 비관세 장벽이 높은 일본의 내수시장을 뚫고 성공한 한국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는 강연이 한창이었다. 강단에 선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50 · 사진)은 16년간 막걸리와 함께한 단내 나는 얘기를 1시간 넘게 풀어놨다. 일본 도쿄국제대 대학원을 나와 다니던 일본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한 일,유통시장을 뚫지 못해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팔던 시절 등등….

"1995년 한국에서 막걸리를 수입해 판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일본 도매상들의 텃세가 워낙 심한 데다 일본 탁주도 잘 팔리지 않는데 누가 한국 막걸리를 마시겠냐는 거였죠.그때 포기했으면 지금의 막걸리 열풍은 없었을 겁니다. "

김 사장은 1995년 이동재팬을 설립했다. 한국 이동주정이 만든 포천 이동막걸리를 수입해 일본에서 '이동재팬 니코리 맛코리'라는 브랜드로 팔고 있다. '미소짓다'라는 일본말 '니코리'와 막걸리를 합성한 브랜드다. 이 제품은 2009년 일본 전체 막걸리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그가 일본에서 '막걸리 대부''막걸리 원조'로 불리는 까닭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공로패(2009년)와 감사패(2010년)를 받았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중문학과를 나와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던 김 사장의 운명을 바꿔놓은 건 '팩 막걸리'였다.

"우연히 한 주류박람회에서 인천탁주의 팩 막걸리를 처음 봤어요. 이거다 싶더군요. 유통기간이 1년 이상이니 수입해 팔면 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죠."

초창기엔 승합차 한 대에 막걸리 10상자,삼계탕 5상자,소주 5상자를 싣고 일본 전역 1만5000여곳의 식당을 5년 동안 돌아다녔다. 한 달에 컨테이너 5개 분량(5000상자,7만5000통),2000만엔어치를 팔았다. 이후 순항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2009년.한류바람이 거세지면서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이 늘자 이를 지켜보던 일본진로와 일본롯데주류 등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뛰어든 것.일본롯데주류와 손잡고 일본 내 유통을 맡은 산토리는 영업직원만 1만명이 넘는다. 이동재팬의 영업사원은 고작 20명.

"시장점유율은 3분의 1로 낮아졌지만 매출은 오히려 늘었어요. 시장이 300억원 규모에서 1000억원대로 커진 것도 있지만 브랜드 전략이 주효했죠.10년 전부터 도쿄시내 모든 전철에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3년 전부터 공중파 광고를 내보내 브랜드를 알린 게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비결이죠."

일본에서는 연간 막걸리 소비량의 90%를 여성이 소비한다. 이동재팬의 '니코리 맛코리'는 일본 20~30대 여성 10명 가운데 7~8명이 알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이동재팬은 18억엔(2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 목표는 21억엔이다. 그는 현재 도쿄 등 4곳에서 운영하는 한식전문점을 내년엔 10개로 늘릴 계획이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