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는 컸다.

서울 지역만 예년에 비해 3배가 넘는 강수량과 최장 장마 기록 등을 갱신하며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를 냈다. 장마는 끝났지만, 남은 상처들은 복구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사태로 실종된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농사짓던 비닐하우스 모두가 물속에 잠긴 농민은 빚더미에 나앉게 되었다.


칠십 평생 일만하다 떠난 불쌍한 우리 엄마를 찾아주세요.

경남 밀양의 양지마을. 어머니가 산사태로 휩쓸려가 실종된 지 10여 일.

자식들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생업도 포기한 채, 황망하게 이 곳으로 달려온 삼남매. 혹여나 엄마가 있을까 누런 흙탕물이 되어 버린 강 안에 발조차 제대로 딛지 못한다. 강물에 젖은 옷의 무게에 피로까지 더해져 몸은 천근만근. 하지만 또 곧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진 자식들은 몸을 쉴 여유도 없이 강행군을 계속한다.

아픈 남편 병원비에 생활비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칠십이 넘도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엄마. 산사태가 일어난 그날도 어머니는 집이 아닌 일터에서 휩쓸려가셨다. 이를 전해들은 삼남매는 죄스러움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어깨만 들썩인다.

포크레인과 헬기까지 동원돼 찾고 있지만, 보이는 건 어머니와 함께 휩쓸려 내려간 몇 가지의 농기구들 뿐. 평소 어머니가 일할 때 입던 옷이 발견되자, 딸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만다.

“옷은 있는데 엄마는 없나... 옷은 없어도 되는데 엄마가 있어야 되잖아. 엄마야 아이고...“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을 잃었다.

양지마을의 다른 집도 산사태의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제사를 준비하고 있던 가족 모두가 엄청난 양의 토사와 물에 떠내려갔다. 진흙더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들. 그러나 살았다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그들 앞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내 아이...

아들의 입던 교복, 살아생전 딸이 좋아하던 분홍색 가방... 아이들의 물건이 불 속으로 하나하나 사라질 때마다 가족들의 흐느낌은 울부짖음으로 변한다.

“민규야 보고 싶어 어떻게 하나.. 우리 민규야 엄마가 보고 싶어 어떻게 해...."


평온했던 시골마을, 서슬 퍼런 날이 서다

수확을 며칠 앞두고 분주했던 경북 성주의 한 시골농가. 평온했던 마을 일대가 농민들의 분노로 뒤덮였다. 갑자기 내린 많은 양의 비가 삽시간에 하우스를 집어삼켰다. 농민들은 이번 장마로 애지중지 키운 참외밭 모두를 잃었다. 그러나 이들은 천재가 아니라 분명한 인재라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의 농지리모델링 사업으로 쌓아놓은 준설토가 폭우에 유실되면서 배수로를 막아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참외 농사를 망쳤어요“

하지만 정부기관측의 입장은 다르다. “4대강 준설토의 토사가 역류의 원인은 아니다” 는 것. 성난 농민들과 마을 시찰을 나온 공무원간에 한바탕 고성과 설전이 오고갔다. 살벌하리만큼 팽팽한 긴장 속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가 계속됐다. 이에 농민들의 흥분이 극에 달하자 나중을 기약하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관계자들. 마을은 폭풍전야를 방불케 한다.

“책임질 사람은 없이 서로서로 미루고 힘 약한 우리 농민들만 죽는 거다. 이거는 누구하나 죽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청산 할 수 없는 빚, 갈 곳 없는 막막함... 나는 여섯 식구의 가장입니다

공무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질 때마다 가장 큰 목소리로 선봉에 섰던 유 이장님.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참외를 만지던 손으로 하루 일당 2만원을 위해 식당일을 하고 있는 아내, 생활비를 위해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첫째 아들이 있기 때문인데..

올해 한파로 집까지 담보지고 5천만 원을 빚졌다는 이장님. 그는 잘 익어가는 참외를 바라보며 누구보다 올 여름을 기다렸다. 이대로 수확한다면 작년 비료 값에 비닐 값까지 모두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한파에 이어 올해 폭우까지 참외 하우스를 연이어 강타했다. 한참 바빠야 될 수확철. 그는 쑥대밭이 된 하우스에 나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더구나 이제 내년 3월까지 전혀 수입이 없는 상태가 계속될텐데...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장으로써 막막하기만 하다.

“제가 자녀가 대학생이 두 명입니다. 지금부터 빚 갚고 애들 공부시킬 돈인데... 작년에 실패해서 올해 길바닥에 나 앉아요. 집이고 논이고 다 넘겨줘야 한단 말입니다.“


7월 9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그 속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그 생생한 현장들은 23일(토) 오전 8시 45분 '휴먼다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경닷컴 이현정 기자 angele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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