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10년에 걸쳐 아이튠즈+앱스토어+아이북스를 묶어 거대한 '애플 생태계'를 구축했다. 소비자들은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사고,앱스토어에서는 앱(응용 프로그램)을,아이북스에서는 전자책을 구매한다. 여기에 필요한 계정을 개설한 고객이 2억2500만명이나 된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모바일 디바이스 누적판매량도 2억2200만대에 달했다.

경쟁사들이 애플과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애플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애플은 디바이스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커다란 콘텐츠 장터를 구축해 전 세계 개발자와 소비자가 몰려들게 했다. 디바이스와 콘텐츠 장터(플랫폼)를 결합한 다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게 애플 경쟁력의 요체다.

스티브 잡스의 '10년 매직'은 2001년 개설한 아이튠즈에서 시작됐다. 당시 세계 음반업계는 불법 복제 파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애플은 음반사들과 저작권 계약을 맺고 음악 파일을 1곡당 99센트에 사고 팔게 했다. 소비자들은 큰 부담 없이 음악을 거래하기 시작했고 애플은 단숨에 세계 디지털 음악 시장을 석권했다.

애플은 곧이어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았다. 당시 MP3플레이어 베스트셀러는 레인콤의 아이리버였다. 아이리버에 익숙해진 한국 소비자들은 "아이팟은 아이튠즈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플은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평정했다.

아이팟 혁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애플은 2007년 6월 전면 터치스크린 방식을 적용한 아이폰을 들고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1년 뒤에는 앱을 거래하는 앱스토어를 열어 판을 뒤엎었다. 개발자가 아이폰용 앱을 개발해 앱스토어에 올려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서비스 업체 중심의 이동통신 생태계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노키아 심비안폰이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고,림(RIM)의 블랙베리가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노키아는 아이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림도 구조조정을 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폰으로 대응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애플은 지난해 4월에는 아이패드를 내놓아 또 한 번 시장을 흔들었다. 안드로이드폰으로 전열을 정비했던 경쟁사들은 부랴부랴 안드로이드 태블릿으로 맞섰다. 삼성 모토로라 HP 등 대다수 폰 메이커나 PC 메이커가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이패드는 여전히 70%대 점유율을 보이며 독주하고 있다.

아이패드는 미디어 시장도 흔들고 있다. 잡지사 신문사 등은 아이패드 발매를 계기로 디지털 에디션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디지털 출판 시대를 앞당기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아이패드 발매와 동시에 아이북스라는 전자책 거래장터를 개설해 아마존에 맞서고 있다.

애플은 조만간 '아이클라우드'라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내놓고 굳히기에 들어간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어떤 모바일 디바이스에 저장된 콘텐츠든 바로 동기화되게 하는 서비스다. 굳이 선을 연결해 동기화할 필요가 없어지면 아이클라우드는 충성고객을 가두는 '울타리'로 작용할 수 있다.

애플이 강한 것은 10년에 걸쳐 거대한 '애플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하드웨어 성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있고,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3월 애플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 IT전문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