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도 회사채를 발행하기가 쉬워지고 있다. 기관들이 금융위기 이후 등돌렸던 'BBB+' 신용등급 회사채 매입에 나서면서 'A'등급 미만 비우량 회사채에도 후한 가격을 쳐주기 시작했다. 외국인들도 원화 강세와 국내 기업들의 체질 강화에 베팅하면서 이례적으로 회사채시장에 돈을 풀고 있다. 중소기업은 자금 조달 창구가 늘어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


◆BBB+ 회사채 잇단'특급' 발행

에이제이렌터카(신용등급 BBB+)는 20일 2년 만기 회사채 300억원어치를 연5.90%에 발행했다고 21일 공시했다. 회사채시장에서 등급별 매매 기준금리로 통용되는 '민간채권평가 3사 평균금리(민평금리)'가 연7.11%임에도 불구하고 1.2%포인트 이상 낮은 이자로 돈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에이제이렌터카와 같은 등급을 보유한 동부한농 이랜드월드 아시아나항공 이랜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근 2~3개월 사이 민평금리를 크게 밑도는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BBB+ 회사채는 3월 한 달을 빼고 매달 50억~580억원의 순발행(발행액-상환액)을 지속하고 있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민평보다 금리가 2%포인트 이상 밑도는 초특급 발행이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관들이 신용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최저 기준이 금융위기를 전후해 'A-'로 높아진 지 3년 만에 BBB+ 회사채의 '귀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에이제이렌터카 회사채 발행에 참여했던 한 증권사 채권인수담당 팀장도 "제2금융권 뿐만 아니라 은행 등 대형 금융회사의 수요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BBB+인 기업들이 비교적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는 것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들의 체질은 강화되는 반면 부실화 위험은 낮아지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이 신용위험이 높은 건설 · 조선 · 해운업종까지는 확산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신용등급이 BBB+인 한양과 쌍용건설은 민평금리보다 1%포인트 안팎의 금리를 더 얹어줘야만 했다.

◆외국인,회사채시장 '큰손' 등장

외국인들도 한국 국공채로 몰려 있던 관심을 회사채로까지 넓히며 '큰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원화 강세 기대감,증권사들의 적극적인 해외 영업이 빚어낸 결과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과 6월 국내에서 발행된 현대캐피탈 회사채 중 2072억원어치는 외국인이 매입했다. 채권발행 주관과 판매는 모두 우리투자증권이 담당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한 사례는 흔하지만 이처럼 외국인이 국내 시장에 참여해 회사채를 매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회사채업계 한 관계자는 "국공채만 사던 외국인이 국내 회사채를 단기간 내 이처럼 대규모로 산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며 "최근 공사채 매입 규모를 늘리는 등 투자 영역을 확대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외국인(기관 또는 개인)이 보유한 국내 발행 회사채는 4983억원에 불과하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액이 총 81조원(전체의 7%)에 이르는 것에 비해 회사채시장에 그만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국내 회사채에 대한'러브콜'은 해외 채권이나 국고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매력과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태호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