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 정 · 청 고위 정책협의회에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 당 · 정 간 의견을 같이했다.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주요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민생예산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다만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10명의 국무위원,여당 대표,최고위원 등 35명의 고위 인사가 총출동한 '매머드급' 고위 정책협의회가 갑작스럽게 소집됐지만 합의한 게 별로 없고 추진하던 정책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홍준표식 이벤트'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등록금 지원 소득수준별 차등

이날 주요 의제는 △물가 안정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비정규직 문제 △복지 사각지대 해소 △추가 감세 철회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사안들이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하반기 거시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물가 안정"이라며 "유가와 원자재 값 상승으로 불안한 공공요금을 안정시키고 독과점 시장구조 등 유통구조를 개선해달라"고 당에 요구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유지해온 '저금리 고환율' 기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원자재 값은 할당 관세 적용을 확대해 물가 상승분을 흡수할 것"이라며 "독과점 시장구조와 유통구조를 개선하고,공기업 경영혁신 등으로 공공요금 인상 요인도 최대한 흡수하겠다"고 답했다.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와 관련,한나라당이 최근 발표한 2014년까지 6조8000억원의 재정을 들여 명목등록금을 지금보다 30% 낮춘다는 틀과 함께 '소득 수준별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기초생활수급자의 부양의무 기준을 완화,수급자를 늘리고 근로장려세제(EITC) 지원 대상과 규모를 확대하며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고용노동부가 8월에 내놓기로 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데도 당 · 정이 공감했다.

이를 위해 당 · 정 · 청은 복지에 필요한 예산을 정부가 예산을 짜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반영할 수 있도록 당 · 정이 함께 참여하는 '민생예산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견은 여전

이날 매머드급 당 · 정 · 청 회의에서 뚜렷한 합의 사항은 민생예산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것뿐이었다. 나머지 안건은 '공감'이나 '추후 협의' 등으로 마무리됐다. 오고 간 얘기들도 한나라당과 정부의 추진 사항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는 전언이다.

대표적인 게 추가 감세 철회 문제였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은 "추가 감세 철회는 이미 당론으로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토를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했고,박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 입장도 있다. 당과 추후 협의해 나가겠다"고 답해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당초 전 · 월세 대책이나 국방개혁법안의 8월 처리도 당내 입장이 조율되지 못해 안건에서 빠졌다. 당 · 정이 8월 임시국회 처리 법안으로 꼽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북한인권법 △분양가상한제 폐지 △공정거래법 개정안 △제주특별자치도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법안 등도 이미 당 · 정이 동의한 부분이다.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로 처리가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한 고위 당직자는 "홍 대표가 정부 부처 실 · 국장까지 포함하면 50명이 넘는 대규모 당 · 정 · 청 회의를 열겠다고 불과 3일 전에 발표해 전날까지 논의 안건을 선정하기도 벅찼다"며 "장관들도 마찬가지여서 보고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시인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