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더 큰 오만으로 치유할 수 없으며,무지는 더 큰 무지로 치유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권력의 무지한 이용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겸허한 자세다. 출발은 우리 모두 무지와 나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만한 무지의 결과를 깨닫고 겸손해지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한 뒤 일찌감치 귀향,켄터키주 헨리 카운티에서 40년째 농사를 지으면서 소설과 시 칼럼을 발표해온 작가다. 스스로 자신은 사상가나 학자가 아니라고 고백하거니와 책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이나 거창한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지식의 한계와 효능을 깨닫자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입증됐지만 굳어져 따분한 지식과 유용하되 불확실한 경험적 지식이 있는 한편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선험이 쌓인 전통적 지식도 있고,본능 같은 선천적 지식과 신체적 지식도 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양심과 능력을 뛰어넘는 일을 하게 하는 영감과 직관,공감도 지식이다.

무지의 갈래 또한 셀 수 없다. 과거에 대한 무지,경험적 증거가 없는 건 존중하지 않으려는 물질주의적 무지,모든 건 상대적이란 말로 얼버무리는 도덕적 무지,잘못된 자신감이란 무지,낯선 건 무시하려는 공포의 무지,게으름의 무지,광고처럼 제한된 지식만 알리는 이익추구형 무지,거짓말로 유지하는 권력추구형 무지 등.

불완전하고 위조된 지식과 무지 및 오만,편협한 사고가 거대 권력과 결합하면 심각한 파괴를 낳는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기업,자정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과학 만능주의가 위험한 이유다. 게다가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삶의 바람직한 마무리로 여기지 않는다. 다들 평균수명을 비롯한 모든 것이 '더' 있어야 한다는,'더'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더'를 위한 바퀴를 굴리는 게 기술 발전의 동력이다.

삶이 피상적이고 불행할수록 더 빠른 진보를 원한다. 그러나 생명을 지나치게 연장하다 생긴 통증이나 치매가 현대의학의 기적을 입증하는 통계수치로 환원되는 건 도덕적 타락이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증산을 위한 전문화에 매달리다 보면 적절한 규모에 대한 감각이 설 자리를 잃는다. 추함과 폭력,낭비는 그 필연적 결과다. 거창한 해결책은 없다. 농업만 해도 한번에 농장 하나,숲 하나,땅 한 마지기를 치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처럼 효율성만 강조하는 생산 방식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길러 상대를 깨부숴야 한다는 식의 진보나 좌파 편을 들지도 않는다. "우파와 좌파의 과격한 개인주의자들은 모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차이는 원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뿐이다(같을 때도 있다).파괴적인 힘의 해악을 막기 위해 그 힘을 파괴하기 위한 힘을 키우겠다는 발상은 전적으로 무익하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