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황허 남쪽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은 살아 있는 역사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를 시작으로 수와 후당에 이르기까지 9개 왕조의 도읍지로 수천년에 걸쳐 이들의 명멸을 지켜봤다. 중국 7대 고도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낙양성 십리하에…"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민요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아들인 남생 · 남건 형제도 여기에 묻혔다고 한다.

마오쩌둥 전 주석은 '해가 진다'는 이 도시의 이미지가 싫어 기피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그래도 문화적 · 역사적 가치는 다른 곳에 비할 수 없다. 특히 오랜 세월을 이어온 만큼 불교와는 관련이 깊다. 중국 최초의 사찰인 바이마사(白馬寺), 선종의 본산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사오린사(少林寺) 등이 뤄양에 자리잡고 있다.

◆'석불의 박물관' 룽먼석굴

그중에서도 룽먼(龍門)석굴은 단연 압권이다. 뤄양시에서 남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이허(伊河)강변 좌우의 룽먼산과 샹산(香山) 두 곳으로 나뉘어 각각 약 1.5㎞에 걸친 암벽에 조성돼 있다. 1300여개의 동굴과 10만여개의 석불로 이뤄진 석굴로 불교 석불문화의 진수다.

북위 효문제가 뤄양으로 천도한 이후 짓기 시작한 것이 당나라 때까지 이어져 완공까지 무려 400여년이나 걸렸다. 다퉁(大同)의 윈강석굴(雲崗石窟), 둔황(敦煌)의 모가오굴(莫高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이곳은 유네스코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룽먼산 쪽을 택해 둘러본 석굴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암벽을 벌집처럼 쪼개 수를 놓듯 새긴 석불 하나하나가 모두 빼어난 예술품이요,문화재다. 만불동은 그 극치다. 작은 석굴 속 3개의 벽면에 1만5000개나 되는 손톱만한 소불상이 섬세한 솜씨로 촘촘하게 각인돼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올라갔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 곳곳에는 거대 불상들이 들어서 있다. 이런 석불들을 후대에 전한 무명의 장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인내와 고행을 감내할 수 있었던 그 불심의 깊이를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손에 닿는 거리에 놓여져 있는 크고 작은 석불들 대부분이 크게 훼손돼 있는 것이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석굴의 하이라이트는 암벽이 끝나는 곳에 세워진 펑셴사(奉善寺)의 거대 불상군이다. 당나라 고종 때 짓기 시작한 걸작품으로 측천무후가 거금을 들여 주도했다고 한다. 카메라에 다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워낙 웅장한 석불들인지라 보존 상태도 아주 좋다. 특히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나한상,천왕상 등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에 자리잡은 대불(비로자나불)은 백미다. 높이 17.4m에 귀 길이만 1.9m나 되는 규모의 장대함도 놀랍지만 수려한 용모에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이 석불은 측천무후가 자신의 얼굴을 본떠 짓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진위는 알 길이 없다.

◆천태종의 발상지 징쥐사

뤄양에서 남동쪽으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리면 광산현 대소산의 징쥐사(淨居寺)에 닿는다. 바로 천태종의 발상지다. 천태종의 종조인 천태 지자(智者)대사(538~597)가 스승 혜사대사로부터 법화삼매를 깨우친 곳이다. 고려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선종과 교종을 통합한 천태종을 열었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와도 그렇게 멀지 않은 인연이다. 그래서 천태종 신도들에게는 성지로 꼽힌다.

1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 천년사찰의 정면 벽에는 '불광보조 법륜상전(佛光普照 法輪常轉)'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붓다가 설한 법의 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사찰은 한때 승려 수가 1000여명이 넘었고 승방도 1000여칸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훼손됐고 승려도 없다. 중국 측은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사찰 앞 호수까지 포함해 대대적인 복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사찰에는 선당,법당,방장실 등 청대 고건물 59칸이 전해진다. 대웅보전은 30개에 달하는 둥근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청대의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특히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비롯해 명나라 때의 건축양식도 남아 있다.

징쥐사 문화연구회 왕자오취안 국장은 "중국 내 사찰 중에서 명대의 양식과 문화재가 남아 있는 사찰은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징쥐사의 녹차 또한 유래가 깊다. 사찰 입구에는 차밭들이 즐비하다. 이곳 다원에는 청대에 심은 차나무가 600여 그루나 보존돼 있다. 또 적벽부로 유명한 북송의 소동파가 이곳 암자에서 선사들과 차를 마시며 선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 뒤쪽 다쑤산(大蘇山) 자락에 소동파 독서당도 남아 있다. 이곳 차가 동파차로도 불리는 이유다.


◆ 여행 팁

대한항공이 인천공항에서 허난성의 성도(省都)인 정저우 국제공항까지 직항편을 운항한다. 약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뤄양은 정저우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중간에 쑹산 사오린사가 있다. 바이마사(白馬寺)는 뤄양의 북쪽 인근에 위치해 있다. 뤄양은 모란의 도시다. 해마다 4월 초~5월 초에는 모란축제가 열려 중국 전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한적하게 관광을 하려면 이 시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뤄양=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