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 회장(80)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머독 소유 영국 타블로이드 일간 뉴스오브더월드(NoW)의 도청 · 해킹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연매출 328억달러(34조원)의 '미디어 제국'이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영국에서 실종된 소녀의 휴대폰 해킹에서 시작된 '도청 스캔들'은 유명 정치인,아프간전 사망자 가족으로까지 확산됐다.

결국 168년 역사의 NoW는 폐간됐다. 머독은 영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생애 최대 치욕의 날"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측근들은 줄줄이 사퇴하거나 체포됐다. 머독은 오랫동안 추진했던 위성방송 인수도 포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머독의 '제국'이 녹아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M&A로 '미디어 제국'건설

머독은 미디어 그룹 뉴스코프 산하에 폭스뉴스,더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더선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미디어 재벌이다.

호주 출신인 머독은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중이던 1953년 멜버른 지역 신문을 소유하고 있던 부친이 사망하자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했다. 신문업에 발을 들이자마자 호주 동부 지역 일간지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1964년에는 호주 전국지 '디오스트레일리언'을 창간했고 뉴질랜드에도 진출했다.

글로벌 미디어시장에 등장한 것은 1969년이다. 이번에 폐간된 영국 NoW를 전격 인수한 것.이듬해에는 '더선'을 사들였다. 두 신문의 판형을 통일해 원가를 줄이는 한편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세를 확장했다. 1972년 호주 최대 미디어 사업가였던 프랭크 패커로부터 '데일리텔레그래프'를 사들이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머독은 1973년 '샌안토니오익스프레스'를 사들이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곧이어 뉴욕포스트(1976년),영국 더타임스 · 선데이타임스(1981년) 등도 연달아 손에 넣었다. 2000년대 들어서자 머독은 뉴스코프 본사를 아예 호주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을 보유한 다우존스를 인수했다.

머독은 언론사 인수 · 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우는 한편 '정경유착'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1970년대 호주 내 주요 선거에서 집권 노동당을 밀어주며 사업 기반을 다졌다.

영국에서는 정세 변화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꿔가며 권력과 밀착했다. 1980~1990년대 보수당을 적극 밀었고,2000년대 노동당 집권기엔 토니 블레어 총리 등과 수시로 비밀회동을 가졌다. 그러나 지난해 보수당 집권이 유력해지자 '더선'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보수당 편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줄타기의 결과는 상대방에게 배신으로 다가갔다. 노동당은 현재 언론사 소유 관련 법안을 개정하자며 머독 제국 해체에 앞장서고 있다.

◆미디어 산업 트렌드에 편승

정치적 · 윤리적 측면에서 머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탁월한 사업적 능력만큼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머독식 미디어 경영의 핵심은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머독이 50여년간 글로벌 미디어 제국을 경영하면서 사업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다"며 "신문과 잡지에서 TV로, 다시 케이블방송과 영화 등으로 사업의 핵심이 옮겨갔다"고 분석했다.

실제 머독은 인쇄매체 성장이 한계에 이르자 1996년 미국으로 귀화,폭스뉴스를 설립해 케이블 뉴스시장에 뛰어들었다. 비록 재매각하고 말았지만 2005년에는 소셜네트워크(SNS)업체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하는 안목을 보여줬다. 또 20세기폭스 · 폭스뮤직 등을 통한 종합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기반을 갖췄다. 최근 그는 위성방송 B스카이B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독은 도청 파문으로 NoW를 폐간하고 B스카이B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도청 스캔들로 머독 일가의 보유 주식 가치가 10억4000만달러(1조920억원)가량 증발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임기훈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