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리 시화호방조제 끝에 조롱박처럼 매달린 대부도로 간다. 대부도는 구봉도 · 터미섬 · 선감도 · 탄도 · 불도 · 메추리섬 등과 연륙된 섬이다. 시화호방조제와 선감도를 지나 그 옛날 '숯을 구웠던' 탄도항에 닿는다. 저 멀리 누에섬이 바라다보인다. 섬이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노는 개구쟁이 같다.

◆정적을 벗삼아 해당화는 홀로 피었다 지고

썰물 시간에 이른 바다가 짐짓 너그러운 척 열어 놓은 길을 터벅터벅 걸어 누에섬으로 간다. 갯벌 한가운데 선 부부바위가 멀리서 눈인사를 보낸다. 갯일을 하던 중 짙은 해무가 몰려와 길을 잃고 헤매다 끝내 갯벌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은 전설을 지닌 바위다. 그들은 아무리 익숙한 일이나 장소일지라도 삶에는 어디엔가 함정이나 복선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던 것일까.

섬 기슭에 핀 분홍빛 해당화가 애잔하다. 문득 내 안에 잠복해 있던 뽕짝 DNA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떠올리며 재생을 도모한다. 등대전망대에 올라서자 짙은 해무에 잠긴 탄도항 · 전곡항이 바라다보인다. '신비의 바닷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한 마리 가오리 같은 제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나마 무인도인 누에섬과 변방에서 온 나그네가 지구 자전의 중심축이 되는 순간이다.

탄도항으로 되돌아와 어촌민속박물관을 둘러본 후 선착장으로 향한다. 누에섬 쪽과는 달리 이곳 내만은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여남은 명의 낚시꾼들이 숭어를 겨냥하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지만 구럭은 텅 비어 있다. 건너편 전곡항의 배들이 배꼽을 드러낸 채 뒹굴고 있다.

◆쓰라린 세월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동주염전

선감도를 지나 1953년 문을 연 동주염전으로 향한다. 옛 성황당 앞으로 난 솔숲 길을 따라가자 11만8800㎡에 이르는 드넓은 동주염전이 나타난다. 염전 앞에는 쓰러질 듯 낡은 초창기의 슬레이트 지붕 집들과 소금창고가 온몸으로 세월의 하중을 견디고 있다. 장마철이라 일을 쉬는 염전엔 고적감마저 감돈다. 까만색 타일이 깔린 소금밭들이 나그네를 압도한다. 도판염은 토판염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장판염보다는 매우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인 생산 방식이다. 바닷물 100바가지가 소금 한 바가지가 되려면 20~25일가량이 걸린다.

염부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구 대부면사무소로 향한다. 길가엔 포도밭이 줄을 잇는다. 풍부한 일조량과 적당한 해풍 속에서 자란 대부도 포도는 당도가 높기로 호가 났다. 대부동주민센터 안,일제강점기(1933년)에 지은 구 대부면사무소(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는 정면 5칸,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건물 중앙에 돌출한 1칸 크기의 현관이 일본식 요소를 가미한 한옥의 변천사를 말해준다.

북동저수지를 지나 16세기께 창건한 대금산 쌍계사에 닿는다. 극락보전과 삼성각밖에 없는 조촐한 절집이다. 극락보전에는 18세기 조성한 목조여래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1호)이 좌정해 있다. 높이 92㎝의 왜소한 이 불상은 어깨가 좁은데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마도 단독불이 아니라 삼존불의 협시불로 제작됐던 듯하다.

극락보전 옆 지하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한 모금 떠 마신다. 쌍계사 전신인 정수암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은 샘물이다. 감로수란 말이 전혀 허랑하지 않다. 정수암을 창건한 취헐 스님의 석종형부도를 들여다본 후 자취가 희미한 길을 더듬으며 대금산(119m)을 오른다. 참나무 · 상수리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다. 사슴벌레와 하늘소를 잡으며 놀던 유년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들이다. 여름이면 뒷동산 사슴벌레를 잡아 놀던 나는 얼마나 잔인한 개구쟁이였던가. 정상에 오르자 서쪽 끝에 있는 선재도가 제가 무슨 삼학도라도 되는 듯이 가물거린다.

◆해식애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걷는 해솔길

구봉저수지를 지나 1950년대 초 염전을 조성하기 위해 쌓은 제방 때문에 육지가 된 구봉도로 향한다. 들머리에는 바다낚시터 방갈로들이 즐비하다. 1997년 소금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값싼 중국산에 밀려 문을 닫은 염전들이 있던 자리다. 구봉도는 10여년 전만 해도 염부들의 품삯을 돈 대신 칡넝쿨로 엮은 동태를 주었다는 동태염전 등 여러 개의 염전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에서 돈자랑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염전 경기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모두 옛이야기가 되고 만 것이다.

종현어촌체험마을을 지나 구봉이(해발 96.5m)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 살에 물이 빠지지 않았을 정도였다는 옛날 '선돌살' 자리가 나온다. 한동안 버려두었던 돌살을 재현해 현재는 어촌체험장으로 쓰는 모양이다. 두 개의 큰 바위로 된 구봉이 선돌에 이른다. 구봉이 풍경을 수려하게 만드는 '풍경의 종결자'다. 저 멀리 선재도에서 영흥도로 건너가는 영흥대교가 보인다. 선이 흐린 옛 묵화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동산 크기만한 무인도 고깔섬 앞에 닿는다. 멀리뛰기라도 하면 닿을 수 있을 듯 가깝다. 해안초소 앞에서 발길을 돌려 안내판 옆 산길을 따라 산을 가로질러 구봉이 약수터(천영물 약수터)로 넘어간다.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약수가 꿀맛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천항 축조에 쓸 돌을 채석하던 중 발견한 약수라 한다. 해안 돌밭을 밟으며 해식애 파식대,침식절벽 등을 바라보며 구봉이 배후의 해안을 돌아 구봉저수지 앞,70~80년생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구봉솔밭에 이른다. 소나무 아래 앉아 소득 없는 담소를 즐기는 '비경제인'과 물 빠진 갯벌에서 부지런히 조개를 줍는 타고난 '경제인'이 절묘하게 어울려 평화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활처럼 굽은 백사장을 걸어서 칼국수 식당촌에 이른다. 대부도는 바지락칼국수의 '비공식 고향'이다. 대부도 사람들이 집에서나 끓여 먹던 초기 단계와 염부들의 점심으로 제공되는 중간 단계를 거쳐 시화방조제 완공 이후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바지락칼국수의 명소가 된 것이다.

방아머리공원에 있는 동춘서커스 가설극장을 들여다본다. 1925년 창단한 이래 유랑 집시처럼 방방곡곡을 떠돌며 서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서커스단이다. 영화배우 허장강,코미디언 서영춘 등 시대의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TV 등에 밀려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던 차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단원들이 장마통에 내려앉은 극장을 수리하느라 바삐 손길을 움직이고 있다. 아무쪼록 동춘서커스가 이곳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길 빌 뿐이다.

디딜방아 방아머리처럼 생겼다는 방아머리선착장에 닿는다. 원래 시화호 안쪽에 있었지만 1997년 시화호방조제를 완공하면서 바깥쪽에 다시 만든 선착장이다. 선착장은 우럭,숭어 등을 잡는 루어낚시꾼들로 북적이고 물 빠진 방아머리해수욕장과 갯벌에선 젊은 남녀들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저만치 시화호방조제 갑문들이 바라다보인다. 풍력발전기도 사람의 마음도 모두 다 바다로 열린 삶을 꿈꾸는 이곳에서 홀로 닫혀 있다. 사방 천지에 혼자만 닫혀 있는 가엾은 시화호방조제 갑문이여.


바지락 칼국수 한그릇 '후루룩'…동춘서커스 공연도

여행정보

대부도 여행은 누에섬 물때에 맞춰 탄도항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누에섬 물때는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khoa.go.kr)에서 확인하거나 누에섬 등대전망대(010-3038-2331),탄도항 어촌민속박물관(032-886-2912)으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갯벌 조개잡이 등 어촌체험은 구봉도 종현어촌마을 어촌체험관(032-886-5200)으로 문의하면 된다. 대부도공원 빅탑극장에서 열리는 동춘서커스단 공연은 하루 세 차례(오후 2,4,6시) 열린다. 입장료 2만원,중학생 이하 1만원.자세한 정보는 동춘서커스 홈페이지(circus.co.kr)나 서울사무소(02-452-3112),공연장(032-887-3114)에서 얻을 수 있다.

대부도 첫머리 방아머리선착장 여객선터미널에서는 대부도~승봉도(1시간20분)~이작도(1시간40분),대부도~자월도(1시간10분)~덕적도(1시간40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대부해운(032-886-7813)

맛집

대부북동 1848-113의 하늘에바다에(032-886-2664)는 싱싱한 조개만 쓰는 모듬조개구이집이다. 영양굴밥 1만원,모듬조개구이(소) 4만원.대부북동 1857-7,구봉도 들머리에 있는 배터지는집(032-884-8747)은 바지락칼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바지락칼국수 6000원.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