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 잇따라 쏟아지는 디젤 차량들이 연비에 대한 상식을 깨고 있다. '연비=경차'라는 인식을 무색하게 할 만큼 ℓ당 20㎞를 달리는 중형 세단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고유가 추세에 따라 소비자들이 차량 구매 시 연비를 중요시하면서 업체들의 연비개선 기술 싸움도 치열하다. 특히 최근 선보인 푸조의 508과 벤츠의 C220 블루이피션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연비 종결자'푸조 508 악티브

푸조의 국내 수입업체인 한불모터스가 지난달부터 국내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한 508 1.6 악티브 e-HDI는 국내에 출시된 차량 가운데 하이브리드카를 제외하고 가장 연비가 높다. 중형 세단임에도 ℓ당 22.6㎞를 달릴 수 있다.

높은 연비의 비밀은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e-HDi'란 푸조의 독자 기술이다. 차가 멈추면 자동으로 엔진이 꺼지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동이 걸리는 '오토 스톱 & 스타트' 기능뿐만 아니라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에너지 회생 장치가 배터리를 충전해 주는 기능이 더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연비를 기존보다 15% 정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말에 서울에서 전북 전주를 오가며 500㎞ 이상 시승해 봤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일반 모드'로 평소 운전 습관대로 차를 몰고 갔다. 평균 연비가 ℓ당 17.9㎞에 달했다. 시내 구간에서는 ℓ당 13~14㎞대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고속도로 주행에선 경제 운전을 하면 ℓ당 20㎞ 이상 나왔다.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는 기름을 많이 쓰는 '스포츠 모드'를 놓고 달리니 평균 연비가 ℓ당 15㎞ 정도 나왔다.

단점이라면 기아 변속이 느리고,변속 시 충격이 느껴졌다. 연비를 위해 변속기를 철저히 수동 변속기 기반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변속 충격을 피하려면 엔진 소리를 듣고 변속이 될 시점에 가속 페달을 살짝 떼었다가 기어가 바뀌는 걸 느낀 후 다시 페달을 밟는 방법을 쓰면 된다.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패들 시프트(운전대에 달린 변속기구)나 기어 레버를 이용해 운전해도 변속 충격은 거의 없다.



◆벤츠도 연비 경쟁 출사표

메르세데스벤츠는 연비 평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고급스럽고 묵직한 차체에 강력한 힘을 내는 엔진 설계에 충실하다 보면 연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엔 친환경차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고연비 차량을 속속 내놓고 있다.

벤츠가 지난달 내놓은 C220 CDi 블루이피션시는 'C클래스' 제품군의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 가운데 하나다. 30~40대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내 · 외관을 세련되게 바꿨고 기존 'E클래스'와 'S클래스'에 적용한 일부 옵션도 추가했다. 엔진은 기존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변속기를 기존 5단에서 7단으로 바꾸는 등 친환경 기술을 담으면서 연비가 8.4% 개선됐다. 이 차의 공인연비는 ℓ당 16.8㎞다. 차량이 멈췄을 때 엔진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에코(ECO) 스타트 · 스톱 기능'을 적용해 연비를 높였다.

빗길에서 서울부터 안산까지 왕복 약 100㎞ 구간을 주행해 봤다. 고속도로도 일부 있었지만 주로 국도,지방도로를 지나며 안산 산업단지까지 다녀 왔다. 평균 연비는 13.4㎞였다. 빗길이라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높은 연비였다. C220의 최고 제한 속도는 시속 231㎞,제로백(출발 후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8.1초다. 연비뿐 아니라 벤츠의 자존심인 성능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