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의 진앙' 그리스를 가다] (2) '유로貨 축복'이 저주로…"과거 1주일 食費, 지금은 햄버거 한 개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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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단일통화 유로의 비극
유로존 가입 이후 자산시장에 돈 몰리며 물가 폭등
독자 통화정책 못써 경제위기 대응 차질…피해 키워
유로존 가입 이후 자산시장에 돈 몰리며 물가 폭등
독자 통화정책 못써 경제위기 대응 차질…피해 키워
유로화는 그리스에 양날의 칼이다. 200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입 덕에 해외 금융시장에서 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스 정치권은 이 돈을 복지혜택을 늘리는 데 주로 쓰는 바람에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고물가는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아테네에서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하는 한종엽 오라에코 사장은 "유로화 가입 전만 해도 1000드라크마가 있으면 시장에서 1주일치 식료품을 살 수 있었다"며 "지금은 1000드라크마에 해당하는 3유로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메뉴 한 개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독자 통화정책 쓸 수 없어 위기 심화
그리스가 처음 유로존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유로화 사용은 '축복'이었다. 그리스 최대 산업인 관광업을 부양시키는 효과를 냈다. 단일 통화인 유로화 도입으로 유로존의 다른 회원국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데 큰 도움을 준 것.그리스의 1992~1996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평균 1.1%,1997~2001년은 3.8%였지만 유로존 가입 후인 2002~2006년에는 4.2%까지 높아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기도 쉬워졌다. 독일 등과 같은 통화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유로 그리스 국채의 가치가 과거보다 높게 평가된 때문이다.
독일 국채(분트)와 그리스 국채 금리 차이는 1990년대 5~6%포인트 정도였지만 유로존 가입 직후 0.2~0.3%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넘쳐나는 자금은 산업과 같은 실물경제로 가지 않았다.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의 버블로 이어졌다. 그리스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는 착각에 빠졌고 과소비 등으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관광업에 의존하던 그리스는 지난해 4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 21일 추가로 1586억유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단일 통화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기준금리를 정할 권한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는 자국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금리와 환율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시장에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했다. 이는 물가만 올리는 결과를 낳았고 정부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됐다.
독자 통화를 썼으면 화폐 가치가 급락해 관광객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단일 통화 체제 아래서는 그런 것마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스의 지난해 GDP 증가율은 -4.5%로 유로존 최하위 수준으로 밀렸다.
◆유로존 탈퇴 다시 도마 위에
지난해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부터 첫 유로존 탈퇴국이 그리스가 될 것이란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고를 파이낸셜타임스에 실었다. 독일 보수연정인 기사당의 한스페터 프리드리히 의원은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 문제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더 이상 금기시될 수 없다"고 말했다. 베르너 랑엔 독일 기민당 원내대표도 "외부지원이 그리스 문제들의 최종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실질적인 대안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서 고강도의 구조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당장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투자자들이 이를 사실상 국가 부도로 받아들여 그리스를 탈출할 것이고 자금 조달줄이 끊긴 은행 및 기업들이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 니코스 벤투리스 그리스경제산업연구소(IOBE) 연구위원은 "유로존을 탈퇴하면 EU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며 "그리스의 허약한 체질은 혼자 힘으로 고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드라크마화로 회귀할 경우 통화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그리스 부채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유로화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고 근본적으로 국가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로화를 포기할 경우 통화가치를 평가 절하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하지만 그리스 정치권은 이 돈을 복지혜택을 늘리는 데 주로 쓰는 바람에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고물가는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아테네에서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하는 한종엽 오라에코 사장은 "유로화 가입 전만 해도 1000드라크마가 있으면 시장에서 1주일치 식료품을 살 수 있었다"며 "지금은 1000드라크마에 해당하는 3유로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메뉴 한 개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독자 통화정책 쓸 수 없어 위기 심화
그리스가 처음 유로존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유로화 사용은 '축복'이었다. 그리스 최대 산업인 관광업을 부양시키는 효과를 냈다. 단일 통화인 유로화 도입으로 유로존의 다른 회원국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데 큰 도움을 준 것.그리스의 1992~1996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평균 1.1%,1997~2001년은 3.8%였지만 유로존 가입 후인 2002~2006년에는 4.2%까지 높아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기도 쉬워졌다. 독일 등과 같은 통화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유로 그리스 국채의 가치가 과거보다 높게 평가된 때문이다.
독일 국채(분트)와 그리스 국채 금리 차이는 1990년대 5~6%포인트 정도였지만 유로존 가입 직후 0.2~0.3%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넘쳐나는 자금은 산업과 같은 실물경제로 가지 않았다.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의 버블로 이어졌다. 그리스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는 착각에 빠졌고 과소비 등으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관광업에 의존하던 그리스는 지난해 4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 21일 추가로 1586억유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단일 통화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기준금리를 정할 권한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는 자국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금리와 환율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시장에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했다. 이는 물가만 올리는 결과를 낳았고 정부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됐다.
독자 통화를 썼으면 화폐 가치가 급락해 관광객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단일 통화 체제 아래서는 그런 것마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스의 지난해 GDP 증가율은 -4.5%로 유로존 최하위 수준으로 밀렸다.
◆유로존 탈퇴 다시 도마 위에
지난해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부터 첫 유로존 탈퇴국이 그리스가 될 것이란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고를 파이낸셜타임스에 실었다. 독일 보수연정인 기사당의 한스페터 프리드리히 의원은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 문제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더 이상 금기시될 수 없다"고 말했다. 베르너 랑엔 독일 기민당 원내대표도 "외부지원이 그리스 문제들의 최종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실질적인 대안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서 고강도의 구조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당장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투자자들이 이를 사실상 국가 부도로 받아들여 그리스를 탈출할 것이고 자금 조달줄이 끊긴 은행 및 기업들이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 니코스 벤투리스 그리스경제산업연구소(IOBE) 연구위원은 "유로존을 탈퇴하면 EU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며 "그리스의 허약한 체질은 혼자 힘으로 고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드라크마화로 회귀할 경우 통화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그리스 부채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유로화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고 근본적으로 국가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로화를 포기할 경우 통화가치를 평가 절하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