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통신사업 구조조정이 공정거래법이라는 암초를 또다시 만났다.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SK텔레콤에서 떨어져 나온 SK플랫폼이 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손자회사가 되면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손자회사인 SK플랫폼은 증손자회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 등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됐지만 증손자회사 숫자가 워낙 많은 데다 상장사들도 있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금융사 소유 금지 조항에 걸려 합법적인 지배구조를 승인받지 못하고 있는 SK그룹이 통신사업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증손자회사 어떡하나

SK텔레콤은 지난 20일 플랫폼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플랫폼(가칭)이라는 신설법인을 설립한다고 공시했다. SK플랫폼은 SK텔레콤의 100% 자회사로 지주회사인 SK㈜의 손자회사가 된다. 애초 SK플랫폼은 SK텔레콤과 동급으로 지주회사인 SK의 자회사가 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SK의 손자회사로 귀결됐다. 즉 'SK-SK텔레콤-SK플랫폼-SK컴즈'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배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SK텔레콤에서 SK플랫폼의 자회사로 변경되는 SK컴즈,텔레비전미디어코리아,커머스플래닛,팍스넷 등 16개 회사들과의 지분관계다. 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SK플랫폼이 이들 16개 회사의 지분 100%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SK플랫폼이 당장 이들 기업의 지분을 100%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SK텔레콤에서 분할 · 신설되는 SK플랫폼은 SK컴즈의 지분 64.7%를 갖게 된다. 팍스넷(59.7%),로엔엔터테인먼트(63.5%),텔레비전미디어코리아(51.0%) 등의 지분도 100%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상장사인 SK컴즈와 로엔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공정거래법을 지키려면 두 회사를 SK플랫폼과 합병하든가 아니면 지분을 전량 인수해 상장폐지해야 한다. 두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도 있지만 통신사업 구도나 전략상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최대 4년까지 유예기간을 활용할 수 있어 시간적 여유는 있는 편이다.

◆국회 처리여부가 변수

SK그룹의 이런 상황은 4년 전 SK증권 매각 문제가 불거졌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SK는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에 내내 시달려왔다. 법대로라면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증권 지분 22.7%를 매각해야 했지만 SK는 2년 유예에 이어 올 7월 초까지 또 한 차례 2년 유예를 받은 바 있다. 더 이상은 유예할 수 없기에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매각을 해야 한다.

SK그룹이 지금껏 버틴 이유는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과 함께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 지분을 소유할 경우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40%만 보유하면 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SK의 통신사업 재편은 물론 현행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데도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SK가 이번에 플랫폼 사업부문을 SK텔레콤의 자회사로 둔 것도 개정안의 통과 가능성에 무게를 뒀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8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도 있지만 변수가 워낙 많아 SK그룹 내에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 전체적인 분위기상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며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SK플랫폼이 자회사 주식을 100% 인수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