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부총재와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한 월례 거시정책협의회가 어제 처음 열렸다. 양측은 거시정책 공조를 강화키로 하고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물가가 고공비행해 서민 · 중산층이 고통받는 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한 선택이라 하겠다. 지금은 한은의 거시적 금리정책과 재정부의 미시적 물가대책이 엇박자를 내온 게 오히려 문제다.

두 기관의 월례 협의회를 두고 일각에선 여전히 한은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현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지냈고,작년에는 한은의 VIP(대통령)용 보고서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데다,금리인상이 지체됐다는 시각이 있는 터라 의심의 뿌리가 깊다. 하지만 거시정책을 담당하는 양대 축인 두 기관이 상호 협의를 통해 거시정책을 제때 구사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라면 굳이 눈을 부릅뜨고 볼 일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영국 등에서도 재무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협의회를 신설한 마당이다.

한은 독립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전제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엔 오류가 많다. 한은 독립은 정부 안에서 독립이지,정부로부터 독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겐 한은도 정부다. 선거로 집권한 정부가 단기적인 이익함수에 몰입될 때 이를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라고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은은 정부와 교류가 잦아 생기는 바이어스와,고립무원에서 빚어지는 독선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명시적인 법과 제도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은행과 정부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이해와 철학을 바탕으로 형성한 수준 높은 문화가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 벤 버냉키 FRB 의장이 매주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다고 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정부가 끊임없이 한은에 간섭하려는 시도는 이젠 떨쳐버려야 할 해묵은 유산이다. 그러나 독립성 문제를 교조적으로 해석하면서 한은 기능이 '물가안정'에 국한돼버린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한은 독립은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