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그리스 아테네의 페리클레오스 거리.수십개의 상점이 몰려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실크 옷 가게 앞에 붙어 있는 '2~20유로에 재고정리'라고 쓰인 간판이었다. 맞은편 빈 점포엔 '임대 중'이란 표시와 함께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고,그 옆 가게는 아예 문이 닫혀 있었다. 이 골목에만 매물이 있는 게 아니다. 아테네올림픽 주경기장도 판매 리스트에 올랐다. 항만과 공항,전력공사,농업은행 등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매각 대상이다. 그리스 전체가 세일 중이다.

◆중국 '차이나 달러' 흔들며 군침

그리스 정부는 2015년까지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500억유로(76조원)를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백화점의 상품 리스트처럼 다양한 1차 매각 대상에는 아테네국제공항,가스공사(DEPA),피레우스항만청,테살로니키항만청 등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20억~40억유로를 마련,급한 불을 끈다는 계획이다. 마사회와 철도공사(OSE)도 연말까지 매입자를 찾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부터 판매에 들어가는 2차 매각 대상 리스트에는 우정공사 스포츠토토(OPAP)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어 2013년에는 3차로 포스트뱅크와 농업은행이 매물로 나온다. 구체적 매각 방식과 절차 등은 8~9월께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스의 국영자산 매각 계획에 맞춰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국 총리로는 24년 만에 그리스를 방문했다. 방문 기간 양국 정부와 업계는 13건의 경제 · 투자 관련 협정서를 체결했다. 50억달러 규모의 '그리스-중국 해운발전 펀드'를 설립,그리스 선박회사들이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중국 관리들의 발길은 부쩍 잦아졌다.

최근 중국 관리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그리스경제산업연구소(IOBE)의 니코스 벤투리스 연구위원은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항만 등 기초시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한국 금융회사들 중에도 포스트뱅크와 농업은행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다. 윤강덕 KOTRA 아테네센터장은 "모 은행은 비밀리에 '그리스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리스 은행들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럽연합(EU) 은행 라이선스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폭락하는 부동산…천지가 매물

국영자산뿐 아니라 호텔 빌라 등 민간 시장에도 매물 폭탄이 쏟아진다. 재정위기와 계속된 시위로 해외 방문자 수가 급감한 게 주요 원인이다. IOBE에 따르면 2008년 120억유로에 달했던 그리스의 관광 관련 매출은 2009년 100억유로,지난해 90억유로 정도로 줄었다. 아테네국제공항 입국자 수 역시 2009년에 전년 대비 7.4% 감소했고 지난해에도 0.7% 줄었다.

유명 관광지의 부동산 시장은 한겨울이다. 유명 관광지인 로데스섬의 주택 가격은 최근 6~7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270㎡(82평) 규모 방 5개짜리 집을 사려면 2009년엔 85만유로 정도를 줘야 했지만 현재는 69만5000유로면 된다. 산토리니 크레타 미코노스 등 휴양지로 잘 알려진 섬에 투자 목적으로 빌라를 사뒀던 그리스인들이 되팔려 하는 경우도 많다. 휴양지 빌라는 저렴한 것이 30만유로 정도고,1000만유로가 넘는 최고급 매물들도 있다.

아테네 시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5성급 호텔부터 소규모 상점까지 매물이 넘쳐난다. 현지의 한 교민은 "그리스가 인기 휴양지로 임대 수요가 많은데도 가격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앞으로 2~3년은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어 섣불리 투자하는 사람도 없다"고 설명했다.

아테네=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